돈은 피보다 진하다(?)

올 들어 두 달여간 지속되다 극적 화해를 통해 봉합된 걸로 알았던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이 이달 다시한번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신호 회장의 차남으로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와중에 물러난 뒤 다시 복귀한 강문석 이사와 4남인 강문석 동아오츠카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피는 물보다 더 진하지만 돈은 피보다 더 진한 것일까. 돈 때문에 가족 간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세태가 아니다. 재벌 집안도 예외가 아니며 이들의 경영권 분쟁은 더욱 추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재연 조짐과 관련, 재계의 대표적인 경영권 분쟁 사례를 살펴본다.


창업주가 일궜던 그룹의 모태가 점점 덩치를 키우면서 2, 3세대 오너 일가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형제간, 부자간 등 숱한 갈등이 표면화돼 왔다.
최근 오양수산 모자의 ‘난’이 가시기도 전에 잠시 휴식 상태였던 동아제약 부자간 분쟁이 다시한번 꿈틀거리고 있다.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는 ‘박카스 부자의 난’

알려진 대로 강문석 이사는 지난해 강신호 회장과 황혼 이혼한 박 모씨와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강 회장은 후계구도로 후처인 최 모씨와 사이에 태어난 4남 강정석 동아오츠카 사장을 내정했다.

강문석 이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동아제약 경영권에서 물러나 2년간 회사 밖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지난해부터 아버지와의 갈등을 겪어왔다.

강 이사는 올해 초 유충식 이사(당시 부회장) 및 수석무역, 한국알콜산업과 공동으로 이사회 장악을 통한 경영권 확보를 위해 ‘주주제안’을 내고 강 회장과 정석 사장에게 맞서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이른바 이렇게 발발한 ‘박카스 부자의 난’은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당시 강 이사와 유충식 전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합의하는 것으로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박카스 부자는 이후 다시는 지분 대결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다시 한번 부자간 경영권 분쟁 신호가 켜지고 있다.

지난 2일 동아제약 이사회에서 해외 교환사채(EB) 발행을 결정하자 강문석 이사가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동아제약 이사회는 현금 유동성 확보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명분으로 회사 총 주식의 7.45%인 자사주 74만8440주(약 650억원 규모)를 외국 법인에 매각하고 이 법인이 8000만달러(약 736억원) 상당의 교환사채를 발행한다는 안건을 결의했다.

강 이사와 유 이사는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 및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4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냈다. 당시 이사회에서는 강 이사를 뺀 5명의 이사가 찬성표를 던져 이 안건을 가결했다.

재계는 이에 대해 강 이사와 강 회장 및 강정석 사장의 우호지분율이 15% 안팎으로 비슷한 상황에서 이번 교환사채를 통해 의결권이 부여되는 지분을 가져가
는 측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올라서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강문석 이사 측은 이사회 입성 후인 4월부터 최근까지 동아제약 9만2293주를 매수했다.

그의 형인 강의석씨가 지난 4월 주식 109주를 취득한 것을 비롯해 강 이사와 함께 하는 유충식 이사가 지난 2일 4만2300여주를 매수했다.

특히 유 이사는 회사가 자사주를 기반으로 한 교환사채 발행을 결의한 이사회에 즈음해 4만여주를 사들여 회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게 재계 분석이다.

유독 현대가에는 가족간 경영권 분쟁이 잦다. 2000년 ‘왕자의 난’에 이어 2003년 ‘숙질의 난’ 그리고 지난해 ‘시동생의 난’에 이르고 있다.


세 차례 경영권 분쟁 아직 끝나지 않은 현대가
우선 왕자의 난은 2000년 정몽구(MK) 회장이 정몽헌(MH) 회장의 심복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인사조치한 것에 대해 고 정몽헌 회장이 보류하면서 표면화됐다.

MK-MH 형제는 첨예한 신경전을 펼치며 사태가 장기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정주영 명예회장은 결국 MK-MH를 포함 ‘3부자 동반퇴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 ‘왕회장 친필 서명 논란’ 등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고 MK는 현대차그룹을 현대그룹에서 역계열 분리했다. 왕자의 난은 그 해 11월 MK가 MH 회장 계열인 현대건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화해’의 악수로 일단락됐다.

현대그룹은 이후 유동성위기에 몰려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이 채권단에 넘어갔다. 정 몽준 의원이 최대주주인 현대중공업계열도 결국 갈라져 나갔다.

MH가 대북사업 의혹과 그룹 유동성 위기 등 복합적인 사안에 휘말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 2003년 11월 시삼촌과 질부 사이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과 MH의 부인 현정은 회장간에는 ‘숙질의 난’이 발생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가의 정씨 일가 적통성의 명분을 내세워 현대그룹의 인수를 선언하면서 이 분쟁은 촉발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이끄는 KCC측은 수개월간 지분 경쟁을 펼쳤으며 2004년 3월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압승하며 일단락됐다.

지난해 4월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과 형수인 현정은 회장간에는 또 한 차례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됐다.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지 명분으로 현대상선 지분 26.68%를 갑작스럽게 매입하면서 분쟁이 발발했다.

이후 현 회장은 공개적으로 ‘시동생의 경영권 찬탈’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유상증자와 우호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방어에 온 힘을 쏟았다. 재계와 증권가는 현대건설 M&A와 맞물려 상대적으로 자금 동원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현대중공업-KCC와 현대그룹간에 다시한번 분쟁이 불거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형제간 치부 폭로전 일색 가족경영 먹튀 두산가

105년이 넘는 역사, ‘형제경영, 가족경영’의 대명사였던 두산그룹에서 발생한 형제의 난은 그간 기업 이미지를 한순간에 깎아내리기에 충분한 일대 사건이었다.

2005년 7월 두산이 당시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신임 그룹회장으로 선임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박용오 전 회장이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일가가 17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중 일부를 해외로 빼돌렸으며 비자금 조성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나를 그룹 회장직에서 내쳤다”고 주장하
면서 시작됐다.


롯데 등 돈 앞에 무너지는 재계의 가족애

두산 측은 즉각 박용오 전 회장의 진정 내용을 반박함과 동시에 그룹과 가문에서 그를 제명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후 계속되는 검찰조사과정에서 두산가의 형제들은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폭로전 일색으로 치달았고 그 과정이 낱낱이 알려지게 됐다.

두산가 형제의 난은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이 `두산그룹 여섯 형제 가운데 용오, 용성, 용만, 용욱 등 4명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일단락됐다.

1996년 롯데그룹은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 등 37만평을 놓고 신격호 회장이 동생 신준호 부회장에게 명의신탁한 땅에 대해 신 부회장이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형제간의 땅싸움은 발발했다.

신 회장은 이 땅을 돌려달라며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법원에 내 법정 다툼과 신 부회장에 대해 그룹 내 모든 직위를 박탈하기도 했다.

이후 신 부회장이 한발 물러서고 신 회장도 일부 땅을 분할, 소유하며 양보를 했지만 신 회장은 신 부회장에 대해 롯데햄과 우유 부회장 직위만을 인정하며 마무리됐다.

한화그룹도 1981년 타계한 고 김종희 회장의 아들인 김승연 회장과 동생 빙그레의 김호연 회장간에 재산상속 문제와 관련, 법정공방까지 비화된 바 있다.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1992년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두 형제간 다툼은 1995년 어머니 칠순 잔치를 계기로 김호연 회장이 소를 취하하며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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