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성 강화가 먼저냐, 병원·의사 수익이 먼저냐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이하 문재인 케어)이 의료계 반대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보장성 강화 대책을 통해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하고 치료에 필요한 의료행위는 신속하게 급여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비용·효과성이 떨어져 건강보험제도에 들어오지 못했지만, 국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약 3800여 가지 의료행위가 ‘예비급여’라는 이름이 붙어 건강보험 제도에 편입될 전망이다. MRI나 초음파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 같은 예비급여의 도입이 비급여 진료항목의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병원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안고 있다. 비급여의 급여화에 앞서 수가 인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의료계 …예비급여 도입→비급여 진료 항목 축소→병원 수익 감소
복지부 …국민 기대 부응하고 의료기관 혼선 최소화 위해 불가피


의료계가 29일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인 ‘문재인 케어’를 놓고 실무 협의를 진행했으나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대한병원협회 실무협의체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건보 보장성 강화 의·병·정 실무 협의체’ 제10차 회의가 열렸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날 협의체는 지난 23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40대 회장이 당선된 이후 처음 열린 회의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지만 의협 비대위가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복부초음파 급여 적용 확대를 담은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고시의 잠정 연기를 복지부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협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당초 정부는 오는 4월을 시작으로 비급여 항목을 단계적으로 예비급여에 편입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아직 상복부 초음파 등을 포함해 37개 항목에 대해서만 적용이 결정된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돼 가지만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한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의료계는 정부의 예비급여 적용 고시 철회를 요청하고 있다. 또 올 하반기 예정됐던 부인과 등 초음파 적용 확대, 상급병실료 건보 적용 등 보장성 강화 계획도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정부 ‘국민과의 약속’
각계 전문가와 소통 지속

 
복지부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의 보험적용을 당초 일정대로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상복부 초음파 검사의 보험적용은 2015년 수립한 ‘2014~2018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계획’, 2017년 7월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 보고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이미 약속한 바 있다”며 “수년간 기다려온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행정예고에 따라 준비를 마친 일선 의료기관들의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복지부는 의료계와 충분한 의견 수렴과 협의를 위해 보장성 강화대책 실행계획 발표 일정에 의료계 입장을 상당 부분 고려했고, 전문학회·개원의사회와의 개별 연락 또한 자제해 왔다”면서 “이를 이유로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은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협상 결렬 이후에도 병원계 등 각 의료계, 시민·노동단체, 학계, 전문가 등과의 소통을 지속 강화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최대집 “문케어는 폭거”
최혁용 “적극적으로 지지”

 
복지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현 상황대로라면 의료계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특히 새롭게 뽑힌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문재인 케어 저지에 대한 강력한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미 의사협회는 두 차례 걸쳐 대규모 반대집회를 가진 바 있다. 4월 말에도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최 회장은 후보 시절 의료계 최대 현안인 문재인 케어를 막아낼 유일한 후보임을 강조해 왔다. 그는 건강보험 청구대행 폐지, 건강보험 단체계약제 추진, 3년 이내 OECD 평균 수가 확보, 의약분업 제도 17년 만에 개선, 한방진료 자동차보험 폐지 등의 공약을 제시하며 의사회원들의 지지를 호소해 당선됐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그는 “문케어는 의사의 자유, 직업수행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박탈해버리는 폭거다. 회원들의 뜻을 엄중히 받들어 의사의 정당한 권익 쟁취와 의사 회원 보호라는 두 가지 임무를 철저하게 완수하겠다”고 문재인 케어 저지에 대한 강력한 의사를 밝힌 바 있다.

30일에는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 이름으로 성명서도 냈다. 성명에는 “정부가 문재인케어라는 인기영합 정책을 의료계와 협의없이 일방 발표해 의정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문재인케어는 건강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동의 등 재정준비없이 의료기관에 희생만 강요하며 대한민국의료를 재정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폄하했다.

이어 비대위는 “복지부의 기만적 행동으로 의정협상은 파국을 맞았고 13만 의사들도 의료계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규탄한다”며 “의정협상 파국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의사계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 찬성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9일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진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 신임 회장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에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대한의사협회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한약은 보험적용이 거의 안 되고 지금은 침과 뜸만 되고 있다. 골격계 처방이 90%가 넘는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한약에 보험이 적용되면 다른 질환치료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의사에 대한 독점권이 지나치다”며 “국민 1인당 우리나라의 의사수는 OECD평균보다 부족해 50% 더 늘려야 하는데 면허를 통합하는 방향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요즘 진단은 의료기기가 다 하는데 관리는 의사만 하도록 하는 게 맞느냐는 말도 있다”며 의사 업무를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기도 했다.
 
신포괄수가 제도 입장 차
과잉진료 vs 낮은 의료수가

 
정부와 의료계는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포괄수가제는 특정 질환에 대해 입원에서 퇴원까지 정부가 정한 한도 내에서 의료비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백내장, 편도, 치질, 자궁수술, 제왕절개, 탈장, 맹장 등 7개 질환에 적용되고 있다.

기존 행위별수가제에서 진료 횟수가 늘수록 환자 비용 부담이 늘고 의사와 병·의원의 수입은 증가해 과잉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병원 측에서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의료수가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반발해왔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포괄수가제인데, 포괄수가제에 행위별수가제, 일당정액제 등을 혼합된 것이다. 기본 진료는 포괄수가를 적용해 상한을 두되 의사가 직접 시술한 일부 특정 진료비와 고가 약제·치료재료엔 행위별수가를 적용해 별도로 보상하는 것이다.

정부는 신포괄수가제를 전체 질병에 폭넓게 적용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의료계는여 역시 “환자에 대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시범사업 확대 중단을 요구하며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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