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서점의 풍경. 사진제공: 초원서점>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초원사진관’이 나온다. 초원사진관은 영화 속 추억과 함께 하나의 명소가 됐다. 이와 비슷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 서울에도 있다. 바로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초원서점이다.

초원서점은 동네에 녹아들어 있다. 높은 소금길 언덕을 지나 주택가를 살펴보다보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이곳을 발견할 수 있다. 위치만 놓고 보면 말 그대로 ‘동네서점’에 최적화된 곳이다. 하지만 그 내부를 보면 동네서점이라 부르기 어려운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음악 서점에 와서 몰랐던 음악들을 만나고,
혹은 알았던 음악이지만 음악 속에 숨겨진 사연들을 만나며
음악적 취향과 지식을 확장해가는 과정은 공부가 아닌 놀이



초원서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청각이다. 기자 역시 문을 열자마자 흐르는 강렬한 남미 음악에 압도당했다. 그 뒤 주위를 돌아보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서가를 메운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초원서점에서는 ‘눈’으로 읽는 책을 판매하는 서점에서 듣는 귀가 먼저 반응하는 이색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음악과 초원서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책과 음악이 함께 있어야 완성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오묘한 분위기를 띤 초원서점이 어떤 공간인지 묻자 초원서점 운영자 장혜진 씨는 “음악 관련 서적들을 모아 팔고, 음악에 인문학적인 접근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서가에 꽂혀진 음악 관련 서적들. 사진제공: 초원서점>
     
그에 따르면 음악 관련 서적 중에서 악보나 음악 이론 등을 판매하는 곳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초원서점은 그와 다른 형태라는 것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역시 클래식, 록, 가요 등 특정 음악 장르에 메여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다. 음악가의 평전이나 자서전, 음악가가 집필한 소설이나 수필, 음악에 관한 소설, 음악으로 인해 쓰인 소설, 음악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들, 음악을 다양하게 듣도록 안내해주는 안내서, 음악 마니아들을 위한 책, 음악 여행을 이야기하는 책 등 ‘음악’이라는 범주를 공유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모았다.

음악서점이어서 전문서적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이 많다고 말을 건네자 장 씨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는 부분에서 흥미를 느꼈다”면서 “(초원서점은) 궁극적으로는 ‘음악 그 자체’는 물론이고 그 안의 ‘삶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음악서점”이라고 말했다.

 
<원목 재질의 가구들이 따뜻함을 자아낸다. 사진제공: 초원서점>

초원서점의 독특함은 복고풍의 인테리어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원목계열의 가구들, 오래된 타자기, 둥그스름한 등받이 의자 등을 보고 있으니 동유럽의 한 가정집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는 장 씨의 손길에서 태어났다. 전문가를 거치지 않고 오롯이 장 씨의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군데군데 묻어 나온 운영자의 삶과 취향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동네서점만의 장점이다.


 
<초원서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참여한 이들. 사진제공: 초원서점>
    
그가 이곳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뭘 해야 할지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는 한 방식으로 서점 운영을 택했다.

오래전부터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왔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인 책과 음악으로 채워진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것에 관한 해답이었다는 것이다.
그 역시 방문객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데 신경을 기울였다. 초원서점은 서점의 역할 뿐만 아니라 기타교실, 초원살롱-노랫말 들리는 밤, 머리말 읽기·초원음악교실을 여는 등 문화기지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

기타교실의 경우 벌써 운영한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참여자는 대부분 직장인이다. 이들은 이 기타교실을 ‘일주일에 한 번 숨 쉬러 오는 곳’이라 칭한다. 바쁜 삶 속에서 쉼이 된다는 것이다.

초원서점이 일상 속 쉼터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숨 가쁘게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틈 사이로 이런 시간들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장 씨의 바람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노래와 음악가의 사연들이 많았다”는 열정이 맞물린 결과다.

 
<저녁 무렵의 초원서점. 사진제공: 초원서점>

초원서점은 서점, 살롱, 기타교실 등의 이름 아래 여러 형태로 변해가며 사람들과 만난다. 장 씨는 이 곳이 과연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지길 바랐을까.

이에 대해 장 씨는 “(초원서점은) ‘음악으로 말을 거는 곳’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들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장 씨의 바람대로 이런 경험들이 모일 때 음악은 단순히 듣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하나의 문이 된다. 음악을 통해 글과 만나고, 나 자신과 만나게 되는 일. 이것이 초원서점에서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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