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증인 채택 직전에 건강상 이유로 출국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귀국한지 벌써 1개월이 넘었다. 이 회장이 귀국한 다음날인 지난 3월 7일 삼성그룹은 4개월간 준비했던 비장의 카드를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사회 환원이라는 명목으로 사재를 털어 내놓은 8,000억원. 이 천문학적 돈은 전 국민을 ‘삼성공화국’이건희 회장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상당히 누그러뜨렸다. 당시 역시 삼성이 하면 뭐든 다르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약발은 그리 오래 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교수)는 삼성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와 관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제일모직 전·현직 경영진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민노당 심상정 의원은 고의로 국감증인 출석을 거부한 이건희 회장에 대해 “재경위는 이건희 회장을 고발해야 한다”며 칼날을 빼든 상태이다.천문학적인 8,000억원 효과는 1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이건희 회장은 또 다시 법의 심판을 받을 전망이다.

이회장 책임론 ‘재점화’

최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교수)가 제일모직 전·현직 이사 및 감사 1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구하는 소제기 청구서를 제일모직 법인에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1996년 10월 제일모직의 이사 및 감사였던 이건희 회장 등이 삼성에버랜드의 경영권을 이재용에게 넘길 목적으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실권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을 제일모직 법인에 촉구했다.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현명관, 유현식, 이대원, 지창열, 제진훈, 김희준, 정기수, 박병규,신세길, 원대연, 이종호, 이필곤, 이대림, 이용근 등 경영진이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회사에 최소 394억 7,859만7,154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것. 삼성에버랜드는 96년 10월 실제 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전환가격 7,700원으로 정하고 전환사채를 발행한다. 삼성에버랜드는 96년말 기준 총자산 8,387억원이며, 자본총계 1,581억 원인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매우 양호한 신용등급을 유지한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였다.

제일모직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기 전, 에버랜드 발행주식 총수 70만7,200주중 10만주를 보유한 지분율 14.14%로서 2대 주주의 지위에 있었다.그러나 당시 삼성에버랜드의 주주였던 제일모직이 이를 인수해 주식으로 전환했다면 상당한 이익을 얻을 상황이었지만, 제일모직 경영진들은 삼성에버랜드의 경영권을 이재용에게 넘기기 위해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를 실권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참여연대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에 대한 실권과정에서 제일모직 경영진이 상법상의 선관주의의무(상법 제382조 제2항)와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3)를 위반해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회사 측에 소제기 청구서를 냈다. 현재 제일모직의 발행주식총수는 5,000만주로 현행법률상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최소필요지분은 발행주식총수의 0.01%인 5,000주로 참여연대는 제일모직 소액주주 4명으로부터 1만2,518주(약 0.025%)를 위임받아 이번 소제기청구서를 제출했다. 현행법률에 따라 제일모직(주)이 3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노당 검찰수사 촉구

재벌저격수로 불리는 민노당 심상정 의원은 국정감사 증인 채택 직전에 건강상 이유로 출국하여 증인출석을 거부한 이건희 회장에 대해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재경위는 고발조치해야 한다”며 강력대응을 준비하고 있다.심상정 의원은 “이건희 회장이 X파일 검찰수사가 종료된 것을 계기로 사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국민은 아직도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면서 “ X파일 사건은 특검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수사가 진행중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은 실체 규명을 위해서 검찰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심상정 의원은 4월 임시국회에서 증인출석을 거부한 이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안건을 제안할 방침이다.

현행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증인출석 요구를 받은 때에는 누구든지 이에 응하여야 하고(제2조),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제12조), 위원회는 불출석의 죄를 범했다고 인정한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제15조) 심상정 의원은 국정감사에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여 지난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매각, 지난 97년 기아자동차 사태 시 이건희의 개입의혹, 지난 98년 삼성생명 주식 매입과정 증여세 탈루 의혹, 지난 2002년 대선 시 380억원의 불법정치자금 소유주 의혹 등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또한 지난 2005년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개정안 마련과정을 보면 정부가 삼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느낄 만큼 삼성그룹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면서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이건희 회장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지 쇄신 ‘고심중’

국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한 삼성그룹은 2006년 시대적 변화요구에 따라 변화할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안기부 X-파일 사건,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등으로 불거진 반삼성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이건희 회장 사재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임직원 사회봉사활동 의무화 방침 등을 통해 삼성의 이미지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일부에선 삼성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는 이벤트식 기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 과거 선대 이병철 회장 때는 삼성계열 한국비료에서 사카린밀수사건이 터지자 정부에 한국비료를 기증했고, 이번 X-파일 사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 등은 8,000억원으로 때우려 한다는 시각이다.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8,000억원은 모두 새로 내놓는 것은 아니다.

4,500억원은 이미 ‘이건희장학재단’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에 내놓은 것이고, 나머지 3,500억원은 자살한 막내딸의 유산 2,200억원과 이재용의 재산 800억원, 그리고 두 딸의 재산 500억원 등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막내딸의 유산은 불법증여를 하지 않는 한 절반 이상 세금으로 환수될 것이다. 또한 세 남매가 내놓는 돈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을 통해 얻은 수익이다. 잘못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는 문제가 갈수록 불거지자 ‘환원’이라는 형식으로 큰 ‘생색’을 내는 셈. 아무튼 참여연대는 영화<친절한 금자씨>를 빗대어 ‘친절한 건희씨’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삼성이 거듭나기 위해선 구조본이 해체돼야 하며, 불법증여와 정경유착의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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