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책한잔의 벽면에 놓인 책들.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 포인트다. <사진제공: 퇴근길 책한잔 인스타그램>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퇴근 후 고단한 몸과 지친 마음을 무엇으로 다독일 수 있을까. 운동, 밀렸던 잠자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이런 기분을 절묘하게 담은 책방이 있다.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퇴근길 책한잔’이다.

무심하게 놓인 간판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책 한 권’이 아닌 ‘책한잔’임을 발견할 수 있다. 서점 이름의 위트는 운영자 김종현 씨에게도 오롯이 묻어 나온다.

‘좋아하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책방을 연 지 언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책방은 김 씨만의 아지트를 넘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다.

일요서울이 ‘퇴근길 책한잔’을 찾았다. 다음은 운영자인 김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자유롭고 싶어 시작한 '자발적 거지'의 삶
퇴근길 책한잔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



-퇴근길 책한잔에 대해 소개해 달라.
▲독립출판물을 주로 판매하는 책방이다. (책방이라고 해서) 책만 파는 곳은 아니고 술도 팔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공간이다.

책과 관련된 북 토크도 하고 책과 무관한 공연을 하거나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사회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싶으면 토론하고.
 
-퇴근길 책한잔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어떻게 짓게 됐나.
▲퇴근길은 나중에 붙인 거고 책한잔을 먼저 지었다. 원래 책방을 하려 공간을 얻은 건 아니었고, 공간을 얻어둔 뒤에 ‘뭐든 해보자’ 했는데 책과 술이 들어온 거다.

영어나 불어 쓰면서 괜히 있어 보이려 하지 말고 아주 단순하게 짓고 싶어서 ‘술 파는 책방’ ‘책 파는 술집’ ‘책술집’ ‘술책방’ 이런 걸 생각했었다. 그러다 ‘책한잔’(이 된 거다.)

왜냐면 (이름 안에) ‘책’도 있고 (술을 떠올리게 하는) ‘한 잔’ 두 가지가 함께 있어서다. 영어로는 북앤펍(booknpub)이라 적고, 로고에는 책과 와인 잔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운영자 캐릭터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간략한 본인 소개를 해 달라.
▲일단 책방 운영하는 주인. 나라고 특별할 건 없다. 똑같이 학교, 직장 다니다가 사업 했었다.

(이게) 나한테는 다 별 거 없는 것 같더라. 열심히 일해도 크게 돈 버는 것 같지 않고, 누구 밑에서 노예로 사는 거 같고.

그래서 ‘(회사)나와서 거지처럼 살지 뭐’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자발적 거지라 부르면서 산다. 그랬더니 속이 편해지더라.
 
-독립서점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책방으로 출발한 건 아니었다. 사업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말 안 듣고 자유롭게 (살자). 공간을 하나 얻어서 진짜 내 마음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갖다 놓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공간을 열었다.

좋아하는 소파, 음악, 집에 있는 책을 가져다 놓다 보니 하나하나 채워지게 됐다. 그 후 술 좋아하니까 술 가져다 놓고, 좋아하는 영화 보고 있다 ‘혼자 볼 거 같이 보자’해서 (같이) 보고. 이렇게 하다 여기까지 왔다. 2015년 4월에 열었으니 3년 됐다.
 
-서점을 열기까지 준비과정은 어땠나.
▲사실 (준비과정이) 어렵진 않았다. 언제 열어야겠단 마음도 없었고 공간(을 어떻게) 꾸밀 계획 하나도 없었다. 도화지에 천천히, 조금씩 그려나간 거다. 준비랄 것도 누구에게 조언 들을 것도 없었다.
 
-퇴근길 책한잔이 갖는 ‘콘셉트’는 무엇인가.
▲(특정한) 콘셉트를 잡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공간이 어떻게 바뀔까’하는 생각은 했다.

반대로 (이곳에) 오는 분에게 ‘내가 머릿속에 있는 걸 펼쳐 놓으면 이렇게 생겼을 거다’ 이런 말을 한다.

 
운영자인 김종현 씨의 모습. <사진제공: 퇴근길 책한잔 인스타그램>

-구의원 선거에도 출마하는 것으로 안다. 계기는 무엇인가.
▲책방 주인으로 살고 있지만 ‘책방 주인’은 내 삶의 일부분이지 내가 곧 책방 주인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촛불혁명을 겪으면서 참 새로웠다.

‘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정치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거나, 우리가 참여해서 무언가 바뀐다는 생각을 거의 못 하지 않나. (그런데 촛불혁명으로 인해) ‘진짜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것과 관련된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이 ‘정치참여 해야지, 민주주의 좋지’(라고 말)한 다음에 ‘특정 정치인 뽑아야 돼’ 이렇게 되더라. 나는 이러한 태도가 반은 맞고, 반은 아쉽다고 생각했다.

촛불을 든 수백만 사람들의 뜻은 다양한데 결론이 고작 특정 정치인 뽑는 것 밖에 없을까. 이걸 직접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다 ‘출마 해보자’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 국회의원 출마는 어렵다. (그래서) ‘제일 작은 건 뭐가 있지’ 하니 구의원이 나왔다. 혼자 나가는 건 재미, 의미가 없어서 널리 알려서 ‘다 같이 나가보자’해서 (구의원)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구의원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현재까지 확정된 건 6명(마포구3·영등포1·은평구1·금천구1)인데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는 젊은이, 퇴직한 어르신 등 그 동네에 관해 잘 안다면 누구나 (구의원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취지다. 구의원 한 명당 선거활동비로 최대 4000만 원까지 쓸 수 있는데 나는 88만 원으로만 해 볼 생각이다.
 
-88만 원이 의미심장하다. ‘88만원 세대’를 염두에 둔 건가.
▲맞다. ‘술 값 아껴서 출마하자’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다. 매일 술 먹고 정치 욕하는데 ‘술 값 두 달 아껴서 네가 나가, 떨어져도 하고 싶은 말 해. (선거)포스터 붙일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퇴근길 책한잔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사진제공: 퇴근길 책한잔 인스타그램>

-운영하면서 보람찼던 경험은?
▲보람보다는 사람들이 오는 게 신기했다. ‘욕먹어도 좋으니 온전히 하고 싶은 대로 해 봐’해서 했는데,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몇 명 정도는 ‘나도 그게 좋았어’ ‘나도 그러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그게 신기하고 좋다.
 
-현재 독립서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많이 늘어났다. 3년 전 책방 열 때는 (독립서점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가본 곳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았다. 요즘은 오는 분이 다른 서점을 말하면 못 따라가겠다.
 
-독립서점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 전에 일종의 ‘트렌드’로만 남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우려를 가지면서도 많이 생겨나는 것을 응원해야 한다. ‘홍대 버스킹’하면 상징되는 것들이 있지 않나. 이건 홍대음악의 한 부분이지 전체는 아닌데 (이런 이미지가) 반복 재생산되면서 각인된 거다. 이걸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홍대 버스킹이) 상징화가 되면서 듣는 이들이 많아졌고, 판 위에서 독특한 음악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독립서점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창업 전과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조금 더 자신감이 붙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조금이라도.

‘백 명 중에 아흔아홉 명은 관심 없지만, 한 명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이 조그만 공간은 운영할 수 있겠구나. 앞으로 최대한 내 마음대로 해야지.' 책방하면서 더 강해진 생각이다.
 
-‘서점’이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나?
▲(퇴근길 책한잔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에 나와 닮은 공간이길 바란다. 누군가 왔을 때 내가 없어도 ‘여기 주인하고 닮았네’하면 잘 한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서점 문화에서 아쉬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책은 좋아하면서 어려워하는 것 같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막 다룬다. 읽다가 덮어두기도 하고, 샀는데 재미없으면 몇 페이지 읽다가 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책을 한 번 펴면 끝까지 봐야할 것 같고, 읽고 나면 독후감 써야할 것 같고, 책도 이름 있는 책만 골라 읽어야할 것 같고 (이렇게 느끼지 않나).

이건 서점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가가 항상 빼곡하고, 조용한 서점의 분위기(같은 것들.) 대형서점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작은 서점의 경우는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길 바란다.
 
-독립서점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돈을 많이 안 들이거나 책임이 줄어들면 자유로워진다. 규모가 크거나 직원이 100명이면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 어려울 거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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