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19일 발표한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은 금융산업의 ‘빅뱅’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키로 했다. 새로 제정되는 법안에는 금융투자자가 증권 파생상품 부동산 실물 등 모든 자산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혼합자산펀드를 개발ㆍ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증권사 등 자본시장 금융회사간의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에도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선진 금융투자회사가 등장하는 반면 이들 대형 회사 출현에 따라 중소형 증권사나 중소형 자산운용사 등은 존립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금융 산업의 구조가 일대 변혁을 맞게 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9일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 방안을 발표. 새로 제정되는 법률안에 따르면 증권, 선물, 자산운용, 투자자문, 신탁업 등 자본시장과 관련된 모든 금융업을 운용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의 설립을 허용하며, 증권, 파생상품, 부동산, 실물 등 모든 자산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중장기 성장 방안의 하나로 자산운용회사, 선물회사 등 자회사를 인수ㆍ합병(M&A)하는 것을 검토하는 등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국내 자본시장은 경제규모에 비해서나 국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뒤처져 있다. 지난 한해 세계 전체국가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1.62%로 전세계 국가 중 13위를 차지했다. 세계 500대 금융기업에 국내 금융사로는 단 한 개사만이 251위에 올랐다.

이 같은 실정이다 보니 국내 금융기업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차치하고라도 국내 자본시장마저 외국자본에 잠식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있다.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증권업의 경우 모건스탠리나 골드만삭스 등 미국 5대 증권사의 2000-2004년 평균자산이 530조원에 시가총액은 65조원. 여기에 반해 국내 5대 증권사의 총자산은 4조원에, 시가총액은 1조5,000억 원에 불과해 미국증권사 대비 각각 0.8%와 2.3% 수준이다. 취약한 자본시장 규모로는 자본시장의 개방화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관련 산업의 발전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자본시장 관련 법률의 개정을 통해 금융 빅뱅을 유도하고 금융혁신과 자본관련 산업의 경쟁을 촉구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대한 우려감도 금융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무한경쟁을 유도하다 보면 자본기업 간에 살아남기 위한 출혈경쟁이 불가피할 것이고 덩치 키우기를 위한 인수합병으로 인한 구조조정도 발생할 수 있어 자본시장의 왜곡이나 대규모 실업사태, 소비자들의 피해도 충분히 예상된다는 것이다.

#. 외국 대형 투자은행과의 경쟁 시험대

자본시장통합법은 선진 금융기법과 상품을 보유한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과 경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업종 간 장벽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성장해온 국내 금융회사들은 시행 초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 선진금융기법을 앞세운 외국 금융회사에 안방을 내줄 수도 있다. 국내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도 증권과 보험업에 진출하거나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 외국의 대형 투자은행과 경쟁을 치를 전망이다.국민은행은 현재 외환은행 인수에 나섰고, 증권과 보험사 인수를 위해 물밑 타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이미 지주회사 성격을 띤 금융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상무는 “국내 금융회사간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어 후폭풍도 우려된다. 또 하나의 금융투자회사가 여러 형태의 영업을 동시에 할 수 있어 내부 견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당장 이 법의 대상이 되는 증권업계는 새로운 환경하에서의 생존전략을 짜느라 부심하고 있다. 은행이나 보험 등은 새롭게 등장할 금융투자회사에 고객을 뺏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증권사 고객예탁금 계좌를 통해 급여이체는 물론 신용카드 대금·지로·적립식 펀드·보험금 납부 등이 가능해지면서 은행의 저축성 예금보다 금리가 더 높은 증권사 계좌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자본시장 통합법 힘 받은 증권주

시장 침체와 정부정책 리스크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증권주가 재기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자본시장 통합법 도입에 대한 기대감이 증권주의 재반등에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한화증권 서보익 연구원은 “자본시장 통합법으로 증권사들이 자산운용사와 합병이나 제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부의 자본시장 통합법 마련 방침으로 그 동안 위탁매매에 치중한 증권사들이 향후 금융투자회사로 성장해 중개뿐만 아니라 운용과 투자 주체로서 자본시장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 한국형 골드만삭스 2010년쯤 탄생 기대

금융투자회사법이 신설되면 증권업계는 영업 범위 확장과 규모 확대를 위한 두 차례의 M&A가 진행돼 4~5개 대형 증권사로 통폐합하게 될 전망이다.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증권업계에서는 10여개사가 금융투자회사 설립을 추진할 것이다. 법 시행 후 1~2년간 자산운용회사와 선물회사 M&A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선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에서 벌어졌던 양상과 비슷하게 금융권끼리 M&A가 나타나 자산 규모는 비록 작지만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능력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형 골드만삭스가 탄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현재 금융업계가 안고 있는 현안 문제는 업계가 주어진 기회를 활용해 인력양성과 상품개발, 리스크 관리 방법 등을 해결하고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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