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와 YS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일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YO’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을 지칭하는 말이고, ‘YS’는 박용성 회장을 말한다. 그룹 직원들은 이들 회장에 대해 이름 대신에 이렇게 부른다. 두산그룹의 경영권 분쟁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박용오 전 그룹회장은 검찰에 형(박용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과 동생(박용성 현 회장)의 비리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접수시켰고, 집안의 맏형이자 어른인 박 전 명예회장은 그를 가문에서 축출했다.하지만 재벌가의 재산 다툼은 단순한 집안일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두산그룹 노조가 “그룹을 해체하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형제간에 일어난 재산 다툼이 사법기관과 노동계에 까지 여파가 번진 것. 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재벌가 형제들끼리 재산다툼을 벌인 적은 많았지만, 검찰에 고발하고 가문에서 쫓겨 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선례는 없지 않느냐”며 “서로 공방전이 치열해질 경우 그룹의 치부가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이 최근 박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두산그룹의 비리의혹이 사실로 드러날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두산일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자는 “YO와 YS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시점에서 불거졌을 뿐, 언젠가 표출될 ‘시한폭탄’과 다름이 없었다는 얘기다. 대체 무슨 얘길까. 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두산그룹 일가와 그에 얽힌 그동안의 사연에 대해 조금 알아봐야한다. 두산그룹은 아들이 많기로 유명한 집안이다. 두산그룹의 실질적인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은 슬하에 6남1녀를 뒀다. 장남이 박용곤 전 그룹 명예회장이고, 이번에 문제를 야기한 ‘YO회장’이 차남, ‘YS회장’이 삼남이다. 그 밑으로 박용현, 용만, 용욱 형제가 있지만, 이들은 형들에 비해 그룹에서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특히 4남인 박용현씨의 경우는 일찌감치 의학도의 길을 걷고,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를 지낼 정도로 그룹의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두산그룹 일가족들은 친형제들이 그룹의 경영에 관여를 하든, 하지 않든 여부에 상관없이 가족 내에 일이 생기면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해왔다.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는 지난 2001년 두산그룹이 난데없이 의류업 진출을 선언했을 당시에 알려졌다.

고 박두병 회장의 유일한 고명딸인 박용언씨는 일찌감치 사법고시를 패스한 김세권씨와 결혼을 했다. 김세권씨는 지난 93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법무법인 KCL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조계 출신의 남편을 둔 덕분에, 고 박 회장의 고명딸 일가는 두산그룹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였다. 박용언-김세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김형일, 희정, 형민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2001년 당시 김형일씨는 개인사업을, 형민씨는 부친의 뒤를 이어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즈음 두산그룹은 회사를 인수해 의류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인수키로 한 회사는 ‘IKE’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김형일씨였다. 당시 김 대표이사는 자금난에 몰려 더 이상 회사 경영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산그룹이 ‘신사업’ 진출이라는 명목 하에 그룹차원에서 위기에 빠진 조카의 회사를 인수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했던 것. 박용곤 전 명예회장의 처남인 김세권 변호사에게도 ‘혜택’은 주어졌다. 김 변호사가 몸담고 있는 KCL법무법인은 지난 97년 두산그룹이 구조조정을 단행할 당시에 구조조정 전 분야에 걸쳐 법률 자문을 담당했다.

지난 2000년에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할 때에도, 법률적 문제는 KCL법무법인이 맡았다.KCL법무법인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가 두산그룹 및 계열사였다. 특히 두산그룹은 이른 바 박씨 일가 ‘4세’들에게 본인들이 원하기만 하면 두루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박 전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인 용현씨는 학계에 몸담았지만, 자식들은 달랐다. 박용현씨의 세 아들인 태원씨는 네오플럭스(두산의 벤처 캐피탈 회사) 상무, 형원씨는 (주)두산 차장, 인원씨는 (주)두산 과장이다. 부친의 경우에는 뜻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지만, 역시 그들은 하나의 ‘두산’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박용오 전 회장의 자녀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박 전 회장의 장남 경원씨는 한동안 두산산업개발에 몸 담았으나 개인 사업을 하기로 했고, 차남 중원씨만 두산산업개발에 남았다. 경원씨는 회사를 그만둔 이후, 전신전자라는 무선기기제조업을 인수했는데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그룹이 친인척들에 대해 취했던 ‘전례’로 보자면 그룹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지원이 있을 법도 한 상황. 하지만 그룹 차원에서는 아무런 ‘액션’이 없었다. 오히려 어려움에 빠진 아들을 돕기 위해 박용오 전 회장이 자신의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박 전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에 대해 지분이 다른 형제들보다 현저히 낮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곤 전 명예회장, 박용성 회장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으나, 박 전 회장의 아들 문제로 인해 형제간의 사이는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해 연말, 수년 간의 케케묵은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박용오 회장측과 박용성 회장 측의 주장이 다르다.

박용성 회장측은 “박 전 회장의 지원으로 아들이 운영하던 전신전자의 경영상황이 나아졌고, 지난해 연말 전신전자가 두산산업개발의 지분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박용오 전 회장이 사실상 두산산업개발을 가지고 독립하려고 액션을 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용오 전 회장측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박용오 전 회장측은 “계열분리를 요구한 적도 없고, 한 개의 회사라도 투명하게 경영하고 싶었다”며 “박용곤, 용성 회장의 경영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결국 박용오-용성 형제간의 묘한 경쟁심, 또 그룹차원에서의 친인척 처우에 대한 차별성 등이 복합돼 이번 사태가 촉발된 것이다. 두산 일가는 겉으로는 ‘화목경영’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손을 맞잡고 있었지만, 속은 곪아터져가고 있었던 셈이다. <재벌야사> 기사가 넘치는 관계로 쉽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