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CEO 수난사]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있나?’
[금융CEO 수난사]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있나?’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8-05-04 17:17
  • 승인 2018.05.04 17:17
  • 호수 1253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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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채용비리 수사에 ‘한숨’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금융권이 쑥대밭이다. 올 초 금융관료 선임으로 각 사별로 차후 방향 설정을 마무리 짓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벌이고 있는 채용비리 수사에 발목 잡혀 제자리 걸음이 지속되는 형세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막무가내식 수사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토로한다.

다만 채용비리에 연루된 금융사들은 “잘못한 부분을 지적받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나 지지부진한 수사와 관련해서는 억울한 면도 있다”는 입장이다. 채용 비리의 경우 금융권뿐만아니라 재계 전반에 문제의 소지가 있어 검찰의 수사 의지가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도 이목이 쏠린다. 

전임 수장들은 법정에…현 수장은 ‘좌불안석’
금융권 신규 채용 `찬바람…피해는 취준생 몫

 
 금융권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곳은 금감원이다. 최근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돼 사퇴한 최흥식 전 원장에 이어 김기식 전 원장마저 도덕성 논란으로 취임 한 달도 안 돼 낙마했다.

지난 3월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형사9단독은 채용비리 혐의 등을 받는 이병삼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선 1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은행 감독기관인 금감원마저 범행을 저질렀다”며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수사 받는 CEO 누구

이 부원장의 채용비리 의혹은 지난해 하반기 제기됐다. 같은 해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일부 시중은행의 특혜채용이 불거지자 금감원은 은행권 전체에 채용비리를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하나, 국민, 대구, 부산, 광주 등 5개 은행에서 22건의 의혹이 나왔으며, 현재까지도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칼끝이 최종 인사권자인 CEO를 겨누었다. 부산은행의 경우 박재경 BNK금융지주 전 사장과 강동주 BNK저축은행 대표가 구속됐다.

박인규 전 DBG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도 채용비리 연루 의혹으로 지난 1일 구속됐다. 전 현직 은행장이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지방법원은 박 전 행장이 채용 비리와 관련해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전 행장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0여 건의 채용비리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DBG금융지주가 신입 직원 채용 과정에 점수를 조작하거나 보훈 대상자의 자녀인 것처럼 서류를 꾸민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에 대비해 인사 관련 부서의 컴퓨터를 교체하고, 채용서류 폐기를 지시하기도 했다.

박 전 행장은 채용 비리 의혹 외에도 수십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법인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산 뒤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 수법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은 지난 3년 동안 비자금 30억여 원을 만들고, 이 가운데 9400만 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금융지주는 물론 금감원까지 불명예스러운 논란에 휘말리며 금융권 수장에 대한 고소·고발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형국”이라며 “조직을 이끌만한 충분한 도덕성과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CEO들이 금융개혁과 실적개선 등 갈 길이 바쁜 금융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채용비리 수사가 막바지로 항하면서 의혹에 연루된 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 기소돼 자리에서 물러나자 현직 CEO도 긴장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최근 채용비리 의혹으로 세 번째 압수수색을 받았다. 압수수색 대상에 충청도 정책지원부가 포함돼 이번 수사가 행장을 정조준했다는 의구심도 퍼진다. 앞서 금감원은 행장이 충청사업본부 대표(부행장) 시절 추천한 지원자가 합격 기준에 미달했으나 임원 면접에 올라 최종합격했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도 채용비리 관련자들이 자택 압수수색을 당했다. 이 중엔 KB금융지주 회장의 자택도 포함됐다.

더 나아가 재계 전반도 검찰 수사를 예의 주시 중이다.
채용비리의 경우 기업 전반에 만연한 일이고, 털어서 문제 안 될 기업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 대외인사팀장은 “100대 기업 중 문제가 될 만한 인사청탁을 받지 않은 인사팀이 있을지 의문스럽다”며 “털자고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업청탁으로 피해를 본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이는 바로잡고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조건 이 잣대로 바라본다면 기업들 대부분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수사로 피해를 입는 건 취업준비생일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채용비리 수사 용두사미?

금융권 신규채용에 `찬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2016년과 지난해 채용 규모를 지속 확대해 왔지만, 올해는 검찰조사 까지 받는 상황이어서 세부적인 채용 규모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채용비리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검사를 받고 있는 신한은행도 신규 채용 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지방은행 5곳도 올해 신규 채용 여부를 확정짓지 못했다. 부산은행과 광주은행 등이 채용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신규 채용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신용카드 및 캐피탈 업계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은행권 인사 담당자들이 입을 모아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 통상 채용 비리 지시가 윗선으로부터 구두로 지시되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혐의 부인은 수사 확대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눈초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