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가 아니라 비방

가장 최근의 홍보전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바로 드럼세탁기. 삼성전자가 “다림질 기능 드럼 세탁기를 개발 완료했다”고 발표한지 3시간 만에 LG전자가 “우리도 같은 기능의 스팀 세탁기가 있다”며 대응했다. 드럼세탁기의 경우 스팀기능 이외에도 삼성과 LG가 각각 ‘은나노’기술을 최초로 세탁기에 상용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14일에는 국제기관의 수상경력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LG전자가 독일산업디자인협회(iF) 주최 공모전에서 9개 부문에 디자인상을 받았다고 발표하자, 삼성이 곧바로 “우리는 12개 부문을 수상했다”고 되받아 친 것. 자사를 알리기 위한 홍보라기보다는 상대기업의 홍보전략을 흐리게 하려는 전형적인 물타기식 홍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과 LG의 홍보경쟁은 가전사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계열사들의 홍보동영상 경쟁에서부터 CEO들의 대학출강에서도 경쟁하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관계자들은 이에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모습은 공정경쟁이 아닌 상호 비방전에 가깝다”면서 “특히 한 사업분야를 넘어 이제는 그룹간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고 말했다.

삼성 vs LG ‘오십보 백보’

삼성과 LG의 이 같은 이전투구식 홍보전은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가 직접적인 계기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당시 일정에 없던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의 현장 방문 소식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삼성을 ‘자극’한 것이다. 당초 삼성과 LG는 세계적인 가전업체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인 가전전시회(CES)를 앞두고 상호간에 공정한 홍보전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김쌍수 부회장의 전격방문이 서로간의 신뢰를 깨뜨린 셈이다. 여기에 LG전자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삼성측 사진이 삭제된 사실마저 알려지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LG측 관계자는 “CES에 김쌍수 부회장이 방문한 것은 우리도 알지 못했던 전격 방문이었다”면서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했는데도 삼성측은 우리의 해명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최근 삼성과 LG간의 홍보경쟁은 다른 무엇보다도 올해 초 발표한 ‘슬림TV’에 있다”면서 “LG가 지난해 발표한 기술선점 보도내용과 올해 초 삼성의 상용화 발표는 양사간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 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슬림TV는 당초 삼성과 LG, 두 라이벌 업체가 공동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 사업”이라며 “공동 연구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인해 흩어지게 되자 LG는 지난해 9월 갑자기 ‘세계최초’란 말을 인용하며 슬림TV를 발표했고, 이에 발끈한 삼성이 올해초 ‘세계최초 양산화’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함께 연구한 내용을 모두 자사의 단독 기록으로 남겼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확대되면서 최근들어 양사 홍보관계자들은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면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힐난하는 등 볼썽사나운 행태까지 불사하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홍보 차원을 넘어선 부분도 없지 않다. 경쟁사 CEO의 약점을 쓸쩍 흘리는가 하면 오너에 대한 불미스런 내부정보까지 제공(?)하고 있을 정도다.업계에서는 이 같은 과열 홍보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과열경쟁이 조기 출시로 제품 부실을 초래해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데다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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