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1일 보도된 미국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2000여 국내 상장사들이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나섰다.

이들은 엘리엇을 겨냥해 “경영 간섭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뒤 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ISS 태클에도 ‘갈 길 간다’
상장사협·코스닥협·일부 기업 ‘지지 발언하기도’


우선 문제부터 살펴보자. 현대차 말고도 삼성전자 등 많은 국내 기업들이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주요 상장사 대부분이 외국인 지분 비율이 50% 상회하고, 오너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다는 점에서 대규모 자본을 무기로 한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노출된다.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이 50%가 넘는 종목은 지난 12일 기준 41개사다. 2017년 2월보다 5개사가 늘었다. 이중 코스피시장 상장사는 25개사, 코스닥시장 상장사는 16개사다.

시가총액 상위 주 중 외국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KB금융(69.51%)이다. 이어 신한지주(69.08%), 네이버(59.1%), 포스코(57.68%), KT&G(53.19%%) 등 순이다. 국내 1위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경우 외국인 지분이 52.26%에 달한다.

여기에 일부 해외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 우량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 주식을 대거 매입해 주주가치 제고 등을 명분으로 이사회 등 기업의 핵심 경영진을 움직이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경영권까지 사들인다.

이 때문에 시총 1위 삼성전자에 이어 3위 현대차마저 이들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한 IR관계자는 “엘리엇의 현대차 지분 보유에 대한 의도가 정확히 나오지 않아 더욱 논란을 키우고 있으며 앞서 삼성전자와 데자뷔되는 부분이 있어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공법 택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 정 부회장은 정공법을 택했다. 정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엘리엇의 문제 제기에 “그것은 그들의 사업 방식”이라며 “엘리엇에 동요하지 않겠다” 말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정 부회장이 직접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주주 친화 정책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아니다”라면서 “주주들의 제안을 신중하게 경청하고, 회사와 주주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제안이 있다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모비스는 앞으로 다양한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투자자 신뢰를 강화해 나가고, 이를 통해 수익이 성장하고 주주환원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면서 “다른 그룹사들도 모비스의 방향 설정에 맞춰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주주 친화 정책을 일관되고 지속해서 실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 의사결정 구조 개선 필요성에 대해 “모든 의사결정이 회사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절차도 더 투명하게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이 같은 적극적인 입장이 전해지자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옹호론이 이어지고 있는 것. 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도 현대자동차그룹을 지지하고 나섰다.

국내 상장법인 2000여곳을 대표하는 상장사협·코스닥협은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안을 공동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상장사협·코스닥협은 “잊을 만하면 일부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에 간섭하고 경영권을 위협한다”며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더 미루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상장사협·코스닥협은 반기업정서를 악용해 배를 불리는 투기자본을 견제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아직까지는 경영권 방어장치가 자사주 매입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2003년 ‘SK·소버린 사태’, 2005년에는 ‘KT&G·칼아이칸 사태’, 2015년 ‘엘리엇·삼성 사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에는 엘리엇이 현대차를 타깃으로 삼았다.
상장사협은 “SK와 KT&G 사태로 투기자본이 얻은 이익만 1조 원을 넘어선다”며 “정부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외국 투기자본을 둘러싼 논쟁이 ‘과장된 공포’라고 지적한다. 소수 지분을 가진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침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을 보면 총수 측 내부지분율이 2011년 53.5%로 반을 넘어섰고, 2017년에는 58.3%까지 늘었다. 내부지분은 총수 일가뿐 아니라 계열사, 임원, 자사주까지 합친 것이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지분은 1.4%에 불과하다”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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