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축제 금주령’ 대학가 신풍속도
[현장취재] ‘축제 금주령’ 대학가 신풍속도
  • 권가림 기자
  • 입력 2018-05-18 17:59
  • 승인 2018.05.18 17:59
  • 호수 1255
  • 3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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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축제에서 ‘술’ 못 팔지만…마실 수는 있다?
텅 빈 이화여자대학교 축제 부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교육부가 올해부터 “학생들이 주점을 운영하는 것은 주세법 위반”이라며 대학가 축제에 술 판매를 금지했다. 정부가 대학의 주점 운영에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각 대학교 총학생회는 축제 부스에서의 주류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치르며 축젯날만 손꼽아 기다려 온 일부 학생들은 정부의 지침에 분통을 터뜨렸다. 술 없는 대학축제가 가능할까.


- 국세청 “외부서 사오는 것은 허용”…호프집 대여하기도
- “수십 년 이어진 축제 관행…학생과 상의 없이 결정” 비판
 

국세청은 지난 1일 교육부를 통해 공문을 내렸다. 

공문에는 “대학생들이 학교 축제 기간 주류 판매 면허 없이 주점을 운영하는 등 주세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매년 발생한다”며 “대학생들이 주세법을 위반해 벌금 처분을 받는 것을 예방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제 인천 A대학 학생회는 지난해 면허 없이 술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국세청 조사를 받기도 했다.

현행 주세법은 주류 판매업 면허 없이 주류를 판매한 자는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4~17일까지 총 사흘간 축제의 꽃이라 불리는 ‘노상 주점’을 관찰하기 위해 서울지역 대학축제 네 곳을 찾았다.

지난 14일 찾은 서울 동작구 중앙대 축제 현장.

9호선 흑석역에 내려서 중앙대로 걸어가는 길목엔 ‘너두 나두 술이 고픈 오늘 밤’, ‘취해도 괜찮아’, ‘의과대학 일일 호프’ 등이 적힌 화살표 스티커가 땅에 붙어 있다.

화살표 스티커를 따라가자 선술집과 맥주집 등이 나왔다.

가게 앞엔 일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가오나시’를 코스프레 한 학생이 입장을 안내하고 있었다.

중앙대 입구로 들어서니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 중앙대 축제에서 끓는다’, ‘재밌닭 오늘 축제닭’, ‘갑분축(갑자기 분위기 축제)’ 등의 말귀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축제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1의학관 뒤편에선 간호대가 준비한 무제한 고기와 음료 등으로 테이블마다 학생들로 붐볐다. 의학관 벽면엔 “올해 간호대 주점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행사장 내부 주류금지입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리는 중앙대 학생들

학교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곧 열리는 공연 때문인지 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돗자리나 옷가지를 깔고 계단에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푸드트럭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닭꼬치, 핫도그 그리고 캔맥주 등을 손에 들고 축제를 즐겼다.

일부 학생들은 교내 호숫가 인근에 자리 잡고 페트병에 들어있는 맥주를 따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술판’ 벌어져
술술 새는 규제

 

대다수 수도권 대학이 교육부 공문에 따라 ‘술 없는 대학축제’를 선언했지만 술판이 벌어진 이 학교 캠퍼스 모습은 여느 대학 축제와 다르지 않았다.

무면허업자의 술 판매가 제한됐을 뿐 ‘금주령(禁酒令)’이 떨어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각자가 구매한 안주와 주류를 교내에서 먹고 마시는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국세청 법인납세국 소비세과 관계자는 “학생이 외부에서 술을 사 와서 마시는 행위는 일반인이 편의점에서 가서 술을 사 마시는 것과 같다. 때문에 (편의점서 술을 사 오는 행위) 그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학생들은 “술을 마시는 것은 어차피 똑같다”라는 입장이다. 공연을 기다리던 한 학생은 “아쉽지는 않다. 다만 확실히 축제가 활기를 잃었다”며 “사실 술 먹고 싶으면 편의점에 가서 사서 오면 된다.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야 (주류 판매) 금지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밝혔다.

국세청의 지적으로 변형된 축제 방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앙대 학사 주점은 학교 밖으로 옮겨져 운영되고 있었다. 개별 과 또는 동아리가 축제 기간 외부의 술집을 대여해 학사 주점을 꾸린 것이다. ‘일일 호프’와 비슷한 유형인 셈이다.

주점 입구에서 안내를 맡은 학생은 “처음으로 학교 밖에 있는 술집을 빌렸다. 이렇게 진행하는 과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편의점 구매만 늘어
“대학 주점 정상화 목표”

 

기자가 지난 16~17일 찾은 연세대·서강대·이화여대 등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축제에 앞서 주류 판매 금지 방침을 밝힌 상태였다.

서강대 김대건관과 게페르트남덕우경제관 사이 골목엔 푸드트럭이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은 건물에서 빠져나와 직화 소고기 불 초밥, 볶음밥, 탕수육 등을 사 먹었다.

지난해까지 주점이 운영됐던 운동장에는 공연을 위해 설치된 무대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이 대학 학생들은 국세청이 수십 년 이상 지속된 축제 관행을 바꾸는 일을 학생과 논의도 없이 추진한 점이 불만이다. 대운동장 주변에서 음식을 즐기고 있던 학생은 “학생들이 주점에서 술을 팔고 벌어들인 수익은 다시 학생을 위한 복지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 판매를 허용해 학생들이 이익을 얻는 게 낫지 않느냐”면서 “(축제) 분위기상 어차피 인근 편의점에 가 술을 사 와서 마신다. 정부의 (규제)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오후 3시께 찾은 연세대는 장마처럼 쏟아지는 비로 2~3개의 축제 부스만 빼놓고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 대학은 궂은 날씨 때문에 축제 자체를 취소하기 위해 회의 중이었다.

 
대학 주점이 예정돼 있던 연세대 대운동장

매년 주점이 운영되는 대운동장 역시 낮 행사를 위한 천막만 쳐져 있었다.

홀로 타투 부스를 운영하던 학생은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데 주류 금지 때문에 갑작스레 엎어진 부스도 있다고 들었다. (주류 금지 방침) 얘기를 듣고 이번 축제에 대해 큰 기대를 안 했다. 중간고사 끝나고 축제를 제대로 즐기고 싶었는데 당연히 (술 판매가 금지된 것은) 아쉽다”라고 했다.

그동안 축제에서의 주류 판매를 허용했지만 당장 일주일여 앞으로 축제가 다가온 상황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교육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대학축제 주점을 정상화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 법인납세국 소비세과 관계자는 “지난 4월 25일 즈음 교육부에 공지했던 주세법은 새로 신설된 법이 아닌 기존에 있었던 법이다. 법 규정을 안내한 것일 뿐”이라며 “법이 신설되거나 개정이 필요했다면 시간을 갖고 의견수렴, 문구수정 등을 했을 것이다. 국세청은 학생을 단속할 목적이 없다. 교육부에 안내해서 학교에 알려 대학 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 달라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사실 주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술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술은 유통 단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사업자는 사업범위 위반으로 면허 취소 내지는 행정 처분 대상이 된다”며 “유통업체까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A대학에 단속을 나가 주세법을 적용했던 적이 있다. 당시 유통업체에 대해선 엄격히 법을 적용했었지만 대학생들에겐 행정지도로 끝냈다. 어차피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라고 국세청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