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성차별적 제도’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 여직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직원들은 “직무성과제도를 빌미로 싼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 당하고 있다. 오랜 관습을 깨지 못하고 남성 우월주의 중심으로 차별 대우를 일삼는 하나은행은 여직원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여성을 차별하는 여행원제를 폐지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여성 분리채용제도인 ‘여행원제’는 ‘성차별적’ 제도로 판정돼, 지난 91년 남녀고용평등법 입법에 따라 폐지명령된 제도다. 구서울은행을 포함해 당시 은행들은 노동부의 명령에 따라 ‘여행원제’를 폐지하고 ‘남녀 단일 호봉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구하나은행만이 일본에서 도입된 ‘코스별 인사관리’를 도입, 사실상 여행원제를 이어갔다.

신인사제도인 ‘코스별 인사관리’는 직무에 따라‘일반직’과 ‘종합직’으로 나눠 직원을 채용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나은행 여직원들은 “용어를 바꾸고 ‘직무’라는 표현을 사용해 포장만 바꾸었을 뿐, 여전히 남녀를 차별하는 불평등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섬세하고 친절한 여성의 특성이 ‘FM/CL(창구 업무)’업무에 잘 맞는다’며 연봉이나 대우가 낮은 일반직에 대거 여성을 채용했다”고 주장했다.반면 하나은행 측은 “일반직이란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격별로 분류된 직무 중 ‘FM/CL’부서의 특성상 채용과 임금처우가 다른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하나은행은 “직무에 따라 성과를 달리하는 ‘직무성과급제’도입 후 개별 직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직원들은 “의도적으로 FM/CL부서는 여성만 채용한다. FM/CL부서 등에서 일하는 일반직 여성행원 비율이 97.7%인 반면, 관리직 등의 종합직에서 일하는 여성 행원 비율은 7.0%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고 맞섰다.

FM/CL부서는 ‘Floor Marketer club’을 줄인 말로, 창구에서 텔러를 맡는 여직원이 대부분이다. FM/CL 직원들은 “일반직 행원에 남자는 없다. 간혹 있는 남자행원들은 영업점 물류담당자, 운전기사, 전산 기사 등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은 “사회적인 관념상 창구 직원을 ‘여성’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 남자 직원들도 꽤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녀 채용 비율은 종합직 부서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올해 종합직 사원으로 여성 7명, 남성 46명을 뽑은 하나은행은 “지원자의 비율과 실력에 의해 선정했다. 일부러 남녀의 성을 구별해 차별해 채용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직원들은 “매년 남자 직원 50명 채용시 여직원은 한명 정도밖에 뽑지 않았다. 고용평등법 등을 피하기 위해 임시 방편적 조치로 올해 유독 종합직 여성의 채용을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며 “올해 7월 채용 공고에서 처음으로 ‘군필자 지원가능’이란 문구를 넣었다”고 전했다.

참고로 8월 초 최종 면접에 붙은 지원자 204명 중 남자직원은 4명이었다. 하나은행은 ‘FM/CL’은 ‘단순업무’를 다루는 특별한 부서로 채용 기준과 임금 체계가 다름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FM/CL직원이라 해도 구하나은행 출신 여행원에 비해 구서울은행 출신 여행원의 임금이 크게는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져 일반직과 종합직 직원의 차이를 드러냈다.구서울은행 출신 여성인 L(34)씨의 경우 “구 하나은행 출신 동료와 같은 일을 하지만 난 서울은행 인사체계 적용을 받아 동료보다 연 800만원 가량 더 받는다”고 말했다.또 동일한 업무를 진행해도 일반직인 ‘행원’과 종합직인 ‘관리·책임자’의 임금의 격차도 최소 연 1,000만원 이상 차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나은행 S지점의 일반직 여성행원 L(39)씨의 경우 “입사 13년차인 내 연봉(3,600만원)이 종합직 5년차 후배(4,200만원) 보다 적다. 나는 수출 업무, 기업·가계송금, 환전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반면, 후배는 수출입외화 전반과 서무일을 보고 있다. 입사연도도 높고, 업무의 양도 높은 내가 왜 후배보다 적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1년차 여성행원인 K지점의 P(26)씨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P씨는 “14년차 일반직 출신 K선배와 1년차 종합직 출신 H동료의 연봉이 같다(3,600만원). 나도 일반직 출신으로 종합직 출신 동료와 비교하면 화부터 난다. K선배가 14년을 버티며 근무해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일반직 출신 1년차 P씨의 연봉은 약 1,500만원선. 동료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종합직 여성행원 L(27)씨 또한 “사실 일반직 출신 행원과 종합직 출신 행원의 업무 차이는 거의 없다. 나랑 똑같은 일을 하는 7년차 선배가 나보다 턱없이 낮은 연봉을 받아 놀랐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측은 “종합직 행원과 일반직 행원이 동일한 업무를 보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종합직 행원과 일반직 행원은 분명히 전문성의 차이가 있어, 비슷한 업무라고 해도 종합직 행원의 판단력으로 보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FM/CL근무자들은 “FM/CL부서의 텔러일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업무량이 많아지고 있다. 신상품판매, 여신상담 등 다른 종합직 직원들이 하는 업무를 동일하게 한다. ‘직무성과급제’기준도 모호하고, 자료가 비공개이기 때문에 일반직 직원들은 확실한 급여체계를 파악하지 못해 억울하다”고 털어놨다.

W지점의 일반직 여성행원 L(32)씨는 “남녀고용 평등법에 의거해 남녀는 모두 동일가치, 동일 노동 임금을 받게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자라는 이유로 연봉의 반도 받지 못한다. 연봉 낮은 것도 서러운데, VIP, 방카슈랑스, 감사, 신탁전담, 교환, 외화 등 남자보다 높은 업무량으로 시간외 근무가 많아지면 서럽다는 생각만 든다”고 전했다. 승진 비율도 남녀에 따라 심한 차이를 보인다. 하나은행은 일정 자격 조건을 갖추면 누구나 승진 대상자 명단에 오를 수 있다. 최근 승진대상자에 오른 인원은 280명. 그중 여성은 200명, 남성은 80명이 명단에 올랐다. 승진대상자에 여성의 비율이 높았지만 승진 결과는 남성 38명, 여성 8명으로 남성의 승진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구하나은행 출신 R(34)씨는 “승진한 여성 대부분이 종합직 행원들이다. 일반직은 승진도 어렵다 ”고 전했다.이런 현상은 일반직 여성이 대거 근무하는 은행 각 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하나은행 여성 영업 행원은 약 1,600여명이고, 남자행원은 200여명이다. 이중 여성영업점장 비율은 5∼10% 수준, 다른 영업점장은 대부분 종합직 남자행원으로 채워져 있다.하나은행 여직원들은 성차별 제도인 ‘여행원제’가 사실상 아직까지 하나은행에 남아있다며 지난 6월 22일 하나은행 노조원은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서울지방 노동청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8월 중순경에 발표될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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