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에서 1500년 전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 처음 발견
함안에서 1500년 전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 처음 발견
  • 경남 이도균 기자
  • 입력 2018-06-07 16:06
  • 승인 2018.06.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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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 왕궁지 유적에서 가야시대 토성, 건물터 등 확인
[일요서울ㅣ경남 이도균 기자] 경상남도는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긴급발굴조사에서 1500년 전 아라가야 왕성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7일 밝혔다.
 
발굴조사전경(항공사진)
  이번 조사는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에 대한 최초의 발굴조사로, 토성(土城, 흙으로 쌓은 성곽)과 목책(木柵, 나무울타리), 대형건물터를 확인하는 등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히는 성과를 올렸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함안지리지인 함주지(咸州誌, 1587년 편찬)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伽倻國舊基)’로 기록되어 있는데다 남문외(南門外), 대문천(大門川) 등 왕성, 왕궁 관련의 지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 그 동안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몇 차례의 지표조사만 실시되었을 뿐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최근까지도 전혀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지난 4월 11일 추정 왕궁지 유적 일원에서 경지 정리 중 드러난 성토(盛土, 흙을 쌓음) 흔적을 함안군청 관계자가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경상남도와 함안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의 현지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거친 결과 긴급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어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어 5월 11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에 착수했다.
 
발굴조사는 성토 흔적이 드러난 곳을 중심으로 약 1,300㎡에 대해 실시했고, 여기에서 토성과 목책, 건물터 등 아라가야 왕성과 관련한 시설이 대거 확인됐다. 이 중 토성은 전체 높이 8.5m, 상부 너비 20m~40m의 규모로 동시기 가야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성곽이다.

또한 성토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공정마다 나무기둥을 설치하거나, 판축(板築, 널판을 대고 내부에 흙을 쌓아 올림)을 통해 점토와 모래를 켜켜이 다져 올리는 등 정교한 토목공사의 흔적이 확인됐다.
 
아라가야추정왕궁지유적(적색)
  토성 상부에서는 2열의 나무기둥으로 이루어진 목책이 확인됐고, 내부에서는 건물터와 구덩이(수혈, 竪穴) 등이 발견됐다. 유적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 조각들로 보아 토성의 축조 및 사용 시기는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으로 보인다. 이때가 말이산고분군에 대형의 고총고분(高塚古墳)을 조성하고 대내외적 교섭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아라가야의 전성기라는 점에서 왕성의 용도와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현장을 답사한 관계전문가들은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은 토성 등 방어시설과 건물지를 갖춘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왕)의 거주공간으로서 이번 발견된 토성은 왕성(王城, 왕궁을 보호하는 성곽)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또한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토성의 정확한 범위와 왕궁지의 흔적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번 아라가야 왕성의 발견을 통해 문헌기록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아라가야 왕성(왕궁지)의 실증적 증거가 확인된 셈이다. 또한 당시 최고 수준의 토목기술로 축조한 토성을 통해 가야 왕성의 축조에 대한 기초자료 확보는 물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점에서 향후 가야 왕성 연구의 핵심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7일 현장설명회를 개최하고 긴급발굴조사에 이어 기초조사와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며, 오는 11일 오후 3시에는 현재까지의 발굴성과를 일반 주민에게 알리는 공개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한경호 도지사 권한대행은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에 대한 긴급발굴조사를 통해 가야 왕성과 왕궁지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올린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하면서 “도내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