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문건은 ‘KPI평가표’라는 형태의 보고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평가지표)란, 매출이나 이익처럼 재무성과 위주의 과거 실적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닌, 미래 성과에 영향을 주는 여러 핵심지표를 묶은 평가기준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기업, 부서, 개인의 성과개선을 목표로 활동 결과를 측정하는 것으로, 각 자 업무활동에 대한 목표치를 설정하고 시행결과를 평가하는 형태를 띤다. 이번에 노동조합이 문제를제기한 KPI평가표는 SK(주) 울산공장의 방 모 상무가 지난해 연말 작성한 것이다. 그는 올 1월 인사이동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방씨는 평가표에서 ‘노사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안정조업에 악영향이 예상되므로, 노사문제로 인하여 안정 조업에 지장이 발생되지 않는 수준의 노사관계를 목표로 설정한다’고 전제하며, “노조집행부의 강력한 노조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현장관리에 필요한 조직체계가 미흡한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효과적 방침전개와 집중관리 등을 위해 Sub팀장, 총반장, 반장 등 중간계층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성을 확보할 계획’을 명시했다.지난 한 해 주요 경영성과 및 활동내용을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관리방법이 제시되었다.그는 인적자원 관리를 크게 “대의원 및 여론 선도층 관리, 총반장 및 반장 계층관리, 면담을 통한 개별관리, 조직활성화 활동 등 4가지로 구분해 집중관리하였다”고 평가한 뒤, “가족과 연계된 활동을 활성화하여 끈끈한 인간관계를 구축하였다”고 제시했다.마지막으로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70%의 우호적인 대의원을 확실하게 확보하였으며, 중식집회, 전진대회 및 투쟁기금 모금 서명 등 노조 주관 각종행사 참여율을 30%이하로 낮추게 되어 실질적으로 조직을 70%이상 장악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끝을 맺었다. 이에 대해, SK(주)노조는 “노조 주관 행사의 참여율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등의 행위는 명백한 노조탄압행위”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그동안 말로만 제기되었던, 회사 내 노조탄압 움직임이 이번 일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며, “노조 대의원들을 장악함으로써 노조의 활동력을 떨어뜨리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노조 측은 그동안 회사측이 노조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왔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기도 했다.이재걸 노조 교육부장은 “회사측이 관리대의원명단을 작성, 지속적으로 관리 또는 감시사찰을 해왔다”며 “가령 노조간부가 A라는 사람을 만나면, 회사에서 A씨를 바로 뒤이어 만나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등의 행위가 지속되었다”고 주장했다.지난해 임금협상 기간 중에는 차량 미행까지 있었다는 것이 이재걸 부장의 전언이다.이에 대해 SK측은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반박했다.

SK 관계자에 따르면 “노조가 해마다 주장하는 판에 박힌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또 다른 관계자는 “KPI평가표란 부서별, 개인별 업무목표를 수립하고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노조를 상대하는 간부의 입장에서는 효율성을 위해 세부적인 계획안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노조측에서도 똑같은 평가표를 작성, 회사측을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문제의 보고서가 작성된 SK(주) 울산공장 관계자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부서별 업무파악의 형태인 보고서의 내용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문제가 될 만한 단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문제의 보고서에 나타난 내용들 중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노조행사 참가율을 떨어뜨리고, 대의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은 상식적인 차원을 넘은 행위라는 것이다.특히 윤리경영을 통해 회사와 종업원이 상호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회사측이 담당 직원들에게 과도한 노무관계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어, 향후 이 문제를 둘러싼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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