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매각 입찰에 국내 자동차 업계는 물론이고 세계 자동차 업계가 놀랐다. 유수의 외국계 자동차 회사 5~6곳이 인수의향서를 내서 놀랐고 유수의 자동차사들을 제치고 중국의 란싱(藍星)그룹의 자동차 계열사인 중차(中車)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지난 9월11일 인수제안서 접수 마감 직전에 GM과 르노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며 쌍용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었다. 쌍용차가 이처럼 세계적인 자동차사들로부터 동시에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쌍용차를 인수하려는 외국계 자동차업체들이 줄을 서자 시장도 곧장 반응했다. 인수제안서 마감일 다음날인 구랍 12일 쌍용차 종가는 1만850원. 지난 한해 3,000원대에서 별다른 변동이 없다가 이 소식이 알려지자 1만원 고지를 찍은 것이다. 지난 97년 1월 1만원대가 무너진지 7년만의 일이다.

채권단과 함께 세계 자동차사들이 쌍용차 매각 입찰에 모두 놀란 이유는 쌍용차의 지난날을 잘 알고 있음에도 쌍용차를 인수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데 있었다. 쌍용차는 ‘돈 먹는 하마’로 불려왔다. 62년 동방자동차 시절 이래 쌍용차를 인수한 기업은 모두 비운의 말로를 맞았다.86년 쌍용그룹 김석원 전회장은 경영난을 겪고 있던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며 과잉투자로 그룹 부실의 원인을 제공했고 95년, 체어맨 출시로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 것은 몰락을 부채질했다. 자동차에 취미를 두고 있던 김석원 전회장은 상식을 뛰어넘는 투자로 그룹을 뿌리째 흔들어버렸다.결국 쌍용차는 97년 대우자동차에 넘어가게 됐는데 이때 김우중 전회장의 작전에 대우는 웃고 쌍용은 울었다. 쌍용차 부채 3조4,000억원 중 절반인 1조7,000억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쌍용차를 넘긴 것. 쌍용그룹은 이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대우 역시 쌍용의 전철을 밟았다. 대우가 굳이 쌍용차 때문에 몰락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독자모델 개발비가 너무 많이 투자된 데다가 내실보다는 쌍용차 인수 등 확장경영을 선택한 것은 대우 패망의 주요인으로 꼽힌다.쌍용차 인수가 마치 몰락으로 가는 길이라는 ‘징크스’처럼 된 마당에 현대차가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현대차는 일찍이 대우차 매각과정에서 인수전에 뛰어들기는 했었다. 그러나 속내는 인수 자체에 있지 않았다. 국내 자동차사들이 대우차와 같은 범주에 묶여 해외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아보자는 차원에서 가격 상승 효과를 기대했던 것. 순전히 내수에만 사활을 걸었던 쌍용차를 인수해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선례들을 충분히 봐온 현대차였던 것이다.쌍용차의 기술력이 일정 수준에 못미친다는 사실도 현대차로 하여금 매각 입찰에 무관심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쌍용차는 자동차 기술의 핵심인 엔진과 전자조절장치, 자동변속기 등의 기술에서 경쟁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신차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이런 사정을 외국 자동차사들이 모를리 없었다. 쌍용차 채권단이 최근 3년간 비공개로 매각을 추진해왔지만 세계 자동차사들로부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GM과 포드, 푸조 등은 인수 검토 과정에서 중도 포기했고 프랑스 PSA그룹은 쌍용차와 채권단으로부터 공장 시찰을 초청받았지만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외국계 자동차사들이 쌍용차 인수 의사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일단 눈으로 보여지는 재무구조가 전보다 건전해졌다는 데 투자자들은 안심했다. 채권단은 1조3,000억원의 빚을 자본으로 바꿔주는 출자전환을 통해 쌍용차 부채를 2000년 3조425억원에서 1조3,748억원으로 줄여줬다.

여기에 쌍용차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의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2001년부터 이익을 내기 시작해 매년 3,000억원의 흑자를 내고 있다.쌍용차 인수에 관심을 보인 회사들 중 GM의 경우 GM대우의 라인업에 쌍용차의 SUV를 추가함으로써 한국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르노삼성도 GM과 사정은 비슷했다. 르노는 최근 매출이 급감 해 조업을 중단할 정도로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차종이 2개(SM3, SM5)에 불과해 한국 내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SUV 등 차종을 확대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그러나 결국 쌍용차 매각 입찰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란싱은 철저히 중국시장을 노린 업체다. 중국은 2010년까지 500만대의 자동차가 판매될 것으로 보이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세계 자동차업계의 사활이 중국 시장에서의 승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중국 정부와 중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국의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줄 수 없다는 각오로 충만해 있다.마침 독자적인 엔진 및 모델 개발 능력을 갖춘 쌍용차가 매물로 나왔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쌍용차로 중국 시장을 지켜내며 동시에 란싱보다는 한수 위인 쌍용차의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란싱은 기대하고 있다.란싱은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에 쌍용차 협력업체와 부품합작 공장을 설립해 싼 값에 부품을 조달할 계획을 세웠다. 또 쌍용차의 연구개발 센터에서 중국에 적합한 RV(레저용차)용 신형 가솔린 엔진을 개발할 방침이다.이제는 중국 기업이 될 수도 있는 쌍용차가 이번에는 제대로 커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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