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 대주주들의 모럴 해저드가 극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난 부실 기업주들의 행태는 기상천외했다. 이들 부실기업주들은 회사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하는 수법으로 회계를 분식해 수천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는가 하면, 회삿돈을 빼돌려 개인 세금납부에 쓰거나 심지어 법인카드를 아들이나 사위에게 발급해 유흥비로 탕진케 했다. 특히 일부 부실기업주들은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의혹도 드러났다.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은 채무변제에 사용해야할 회사 공금을 이같은 방식으로 낭비한 6개 기업 21명의 임직원을 적발했다.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 등 9명을 구속기소하고,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 등 12명을 불구속기소하는 한편 이들 6개 기업들로부터 공적자금 79억8,000만원을 회수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일부 부실기업주들은 법정관리 중이거나 워크아웃 진행 중인 상태임에도 법정관리인과 공모해 기업 재산을 경락자금으로 유용하는 등 관리감독의 허점을 보였다.

공적자금 투입해도 오너를 위한 경영 여전

나산그룹 안병균 전회장은 나산, 나산종건 등 계열사 회삿돈 256억원을 계열사에 대한 증자 자금, 종합소득세 등 개인세금 납부에 유용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안 전회장은 그룹 사세 확장을 위해 상환능력이 부족한 계열사나 자신의 개인공사에 회삿돈을 지원하게 하는 수법으로 배를 불렸다.검찰에 따르면, 안 전회장은 지난 98년 1월 나산 부도 이후 계열사 자금을 가족이나 임원이 대주주인 회사에 부동산 경매자금으로 대여해 횡령했다. 안 전회장은 경매를 통해 획득한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지난 99년부터 2000년까지 6개 계열사를 통해 골프장, 건물, 상가 등 감정가 1,300억원대 부동산 8건을 매입했다. 안 전회장은 계열사 대부분이 법정관리나 화의 등 도산절차를 밟고 있음에도 관리감독 부재를 틈타 자신의 처삼촌인 나산클레프 법정관리인 박모씨와 공모해 회삿돈 27억원을 부동산 경락 자금으로 유용했다.또한 검찰은 안 전회장이 경매로 나온 나산그룹 부동산을 위장계열사를 통해 우회 취득한 단서를 잡고 자금원을 추적하고 있다.

법인카드 친인척에 발급 탕진

뉴코아 그룹 김의철 전회장은 지난 97년 11월 기업 부도 이후에도 계열사 국세 환급금 14억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등 28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회장은 지난 97년 11월 회사 부도 이후 법정관리에서 제외된 계열사의 급여 대장을 조작, 자신과 개인기사의 급여와 승용차 대여료 등의 명목으로 회사자금 4억1,700만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특히 김 전회장은 지난 2000년 8월~2002년 12월 계열사에 근무한 적이 없는 자신의 아들과 사위에게 법인 카드를 내줘 하룻밤에 수백만원씩 약 1억4,000만원을 유흥비로 탕진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사용한 금액의 약 80% 이상은 룸살롱 등 유흥주점 술값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김 전회장은 회사자금 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돼 2000년 12월 집행유예로 나온 뒤 계열사의 이익잉여금 처분 계산서 등을 허위작성해 대주주인 자신의 아들에게 회삿돈 7억원을 불법 배당하는 등 개인적으로 약 1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사기 대출과 분식, 부당지원

김 전회장 등은 지난 94~96년 계열사인 H유통과 S건설 재무제표를 허위작성하는 수법으로 약 300억원대 회계 분식으로 2,865억원을 사기대출받아 금융기관에 부실을 떠넘겼다. 안병균 전회장은 지난 95~98년 상황능력이 없는 나산유통 등 계열사에 공사미수금과 대여금 형태로 나산종건 자금 2,048억원을 부당지원했다. 안 전회장은 지난 97년 나산종건이 분양자 958명으로부터 중도금으로 납부받은 T오피스텔과 L백화점 오피스텔 사업에 대해 금융기관에 채권최고액 94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주는 배임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D무역 백모 회장은 지난 96년 1,914억원의 분식회계로 1,443억원을 사기대출받고 만성적자로 회생이 불가능한 관계사인 H무역에 220억원을 부당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S건설 이모 전회장은 지난 97년 이후 364억원을 사기대출 받고, 94억원을 계열사에 부당지원토록 했으며, 공사대금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으로 46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자금 조성 해외로 재산 빼돌리기

일부 부실 기업주들은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린 일도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국내 굴지의 제지회사였던 신호그룹 이순국 회장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4월까지 펄프 수입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 18억원을 조성, 이를 미국 은행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병근 전 신호제지 과장 등 직원 4명은 비자금 조성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이 전회장을 협박, 3억 9,000만원을 갈취하기도 했다. 비자금을 관리했던 문모 전 사장은 노조 무마 명목으로 사용하겠다며 이 전회장으로부터 받아간 비자금 2억 300만원을 개인 생활비 등으로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자금 심부름 역할을 했던 이 회사 이모 대리는 지난 98년 12월 퇴직하면서 비자금관리 대가로 3억 1,000만원을 받아가 주식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그룹 오너에서 시작된 도덕 불감증이 일반 임직원들에게도 만연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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