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씨 현대그룹 오너 등극지난 10월21일 현대그룹은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의 미망인 현정은씨를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선임했다. 이로써 현 회장은 재계 서열 15위 재벌인 현대그룹의 오너로 자리잡았다. 정몽헌 회장이 사망한지 78일만의 일이었다.현정은 회장은 본질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는 아니지만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여사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8.75%를 위임받아 경영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반쪽짜리’ 회장이지만 내년 3월 정기주총을 통해 등기이사로 등재될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모처럼 오너 일가가 경영을 직접 챙기겠다며 전면에 나서자 이에 매우 고무된 분위기. 그동안 현대는 고 정몽헌 회장 사망 직후 그룹 경영권을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아 직원들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었다.경영권 향배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외국계 기관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여기에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이 ‘우호세력’으로서 친족그룹의 경영권을 지키겠다며 지분을 집중 매입했다. 그러자 세간의 관심은 “김문희 여사가 최대주주 지위를 뺏기는 것 아니냐”는 쪽에 집중됐다.결론적으로 정 명예회장의 지분매입이 현대를 거머쥐기 위한 시도는 아니었다는 분위기지만 김문희 여사와 벌인 신경전은 그러한 예측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9월24일 KCC는 “정상영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에게 290억원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받은 김문희 여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2.5%를 넘겨받아 정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의 진정한 최대주주”라고 주장한 것이 신경전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그때까지만 해도 정 명예회장은 수차에 걸쳐 ‘섭정경영’을 강조해왔던 터였다. 때문에 ‘최대주주’가 내포하는 ‘소유’의 의미가 정 명예회장의 진의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김문희 여사는 발끈했다. “주식을 담보로 맡기면서 의결권까지 위임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리석은 질문 하지 마라”며 “상식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KCC와 정 명예회장에 대한 불신과 불쾌감의 표시였다.그러자 KCC가 한발 물러서며 “의결권까지 넘겨받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KCC의 번복은 곧 정 명예회장과 공식 언론 창구 사이에 사전 입맞춤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김문희 여사가 불쾌감을 표시하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해명을 낸 것은 정 명예회장이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현대 내에서는 자칫 유족들과 친척들 사이에 화를 부를 뻔한 상황에서 정상영 명예회장이 원만히 풀어나갔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관계자는 “만약 정 명예회장이 현대를 거머쥘 의지가 있었다면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등 형제그룹들이 적극 방어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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