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용기는 있어도 갈라설 용기는 없다?
싸울 용기는 있어도 갈라설 용기는 없다?
  • 고재구 회장
  • 입력 2018-07-06 19:09
  • 승인 2018.07.06 19:09
  • 호수 1262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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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책인즉명(責人則明·자기의 잘못을 덮어두고 남만 나무람)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어떻게 이런 인사들이 아직도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다. 2016년 총선, 2017 조기대선, 그리고 최근의 6.13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거푸 참패의 쓴잔을 마셨으면 국민 앞에 적어도 지금 같은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대표 권한대행이라는 사람은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친박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다”며 당 내분 사태의 책임을 특정 계파에게 떠넘기고 있어 분란을 키우는 양상이다. 계파 싸움을 말려도 시원찮은 마당에 되레 불 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는 행태다. 
6월 지방선거는 처음부터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었다. 보수는 이번 선거에 사실상 한국당을 응징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보수의 본심은 어떤 이유에서건 배신을 용납하고 반기지는 않는다. 선거기간에 홍준표 전 대표를 위시한 당 지도부의 선거유세지원이 오히려 해(害)가 돼 후보자들이 손사래를 쳤던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 터다.
그러면 탄핵파와 탄핵반대파, 이들 두 세력이 한국당 내에서 공존할 수 없는 실상이 확인된 만큼 해결 방법 또한 명료해졌다. 당을 해체해서 이념과 뜻이 같은 세력이 새로운 당을 만들든가, 아니면 둘 중 하나가 당에서 나가 분당하는 방법으로 다가오는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당은 진즉에 해체됐어야 마땅했다. ‘친박’과 ‘비박’이 극명하게 대립했던 2007년에 그럴 기회가 있었으나 그들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대선 앞에서 잠시 휴전했다. 다시 이들의 싸움이 불붙은 것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08년 총선 때 친이계 주도의 ‘공천 학살’이 발생하면서였다. 친박은 이를 갈면서 활활 타오르는 복수심으로 때를 기다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살아서 돌아오라”는 촌철살인이 이때였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총선에서 주류가 된 친박계가 친이계를 상대로 ‘공천 학살’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때도 이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대선 직후가 이들이 헤어질 적기였지만 역시 이들은 헤어지지 않고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소위 ‘옥새파동’이란 공천파문을 일으켰다. 결과는 참패했고 그래도 헤어지지 못한 이들은 탄핵 정국을 맞아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듯 보였다. 그런 것이 홍준표 대선 후보의 보수통합 명분으로 지리멸렬 상태의 바른당 탈당파들이 대거 복당해 조기 대선과 지방선거에 참패하고 말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헤어지기에 겁을 내고 있다. 
조선시대 막강 권력을 휘두르며 정권을 쥐었던 훈구파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으나 사화(士禍) 등을 통해 권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내부 혁신을 하지 않고 자기네까리 권력다툼만 한 탓에 그 힘이 점점 약해지기에 이르렀고 사림파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지방에 은둔하며 세력을 키워 마침내 선조 때 외척정치의 종말로 훈구파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사림파가 정권을 거머쥐었다. 
한국당도 위기 때마다 내부 혁신 없이 땜질 봉합으로 연명할 수 있었던 건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그렇게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야당이 돼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권력마저 없어졌다. 사림파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지방 권력도 한국당에는 거의 없다. 이대로 계파 싸움으로 세월을 허비하다가는 훈구파처럼 아예 우리 정치사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고재구 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