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국 전사장의 자살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형 노건평씨의 인사청탁 문제를 해명하면서 남 전사장을 언급했고, 남 전사장은 한강에 투신했다. 결국 이 발언과 남 전사장의 자살은 노 대통령에게 커다란 악재가 되고 말았다. 정치판에 의해 또 한 명의 기업인이 희생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남 전사장이 ‘자살’이라는 탈출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되짚어봤다.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1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대우건설 남상국 전사장의 친형 건평씨에게 연임을 청탁한 사건’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남 전사장은 주변에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는 말을 남긴 뒤 집을 나가 한강에 투신했다. 투신 사건으로 야권내 탄핵 찬성여론에 힘이 실렸고, 결국 마지막까지 반대의사를 보이던 의원들마저 탄핵찬성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다음날인 12일 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남 전사장에 대한 유감·위로 메시지를 남겼다. 노 대통령은 “잘잘못을 떠나 죄송하게 생각하며 남 전사장 투신에 대해서는 가슴아프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과발언으로도 ‘남 전사장의 자살과 탄핵안 가결’상황을 되돌려 놓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남 전사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대우비자금 및 인사청탁 사건’의 검찰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던 것일까.남 전사장은 30년간 대우건설과 운명을 같이한 ‘대우맨’이었다. 지난 74년 대우에 입사, 97년 전무로 승진할 때까지 20여년간 공사현장에서 보냈다.

서울역 앞 대우 본사도 그가 현장에서 감독했다.그리고 대우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두달 전인 99년 7월 사장에 취임한 이후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대우건설은 3년만에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게 됐고, 남 전사장은 경영수완이 탁월한 경영인으로 부각됐다.하지만, 남 전사장은 ‘대우건설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대우건설 비자금 조성 및 정치권 로비 의혹을 수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강원랜드 건설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가 포착됐고,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검찰은 특히 조사과정에서 남 전사장이 비자금 조성 등에 깊숙히 개입한 혐의를 잡고, 지난 1월 7일 남 전사장을 긴급체포하기도 했다. 검찰은 남 전사장의 수사를 통해 대우건설이 수백억대의 비자금을 조성, 여야 정치권에 수십억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밝혀냈다.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이 대우건설로부터 3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도 대우건설로부터 1억7,5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한나라당 이회창 전총재의 법률특보인 서정우 변호사도 대우건설로부터 15억원의 자금을 제공받은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밝혀졌다. 이외에 남 전사장은 구속된 열린우리당 송영진 의원과 한나라당 박상규 의원, 민주당 한화갑의원 등에게도 억대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가 드러나 곧 사법처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 노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남 전사장은 또다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사실 남 전사장은 지난해 1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후임사장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러 잡음에 휘말렸다. 당시 남 전사장이 권력 실세층에 청탁을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특히 청와대측이 특정 인사를 사장에 앉히려고 한다는 등 ‘청와대 로비설’얘기도 흘러나왔다. 검찰은 최근 노 대통령의 사돈 민경찬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소문이 일부 사실이었음을 밝혀냈다. 남 전사장이 자신의 연임을 위해 건평씨에게 3,000만원을 건네며 로비했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건평씨와 남 전사장은 민씨를 통해 알게 됐다. 병원 인수 및 사업실패 등으로 자금난을 겪던 민씨는 지난해 8월 건평씨에게 부동산 투자회사인 조선리츠 대표 박모씨와 이사 방모씨를 소개했다. 이 자리에는 대우건설 전무 박모씨도 참석했다.민씨 및 박씨와 방씨, 그리고 대우건설 전무 박모씨 등은 지난해 8월 경남 김해 진영읍 건평씨 자택으로 찾아가 선물로 가져온 최고급 양주를 나눠 마시면서 남 전사장의 유임 청탁을 했다.그리고 며칠 뒤 남 전사장은 서울 특급호텔에서 건평씨를 직접 만나, 식사대접을 하며 인사 청탁을 했다. 이어 추석을 앞둔 지난해 9월5일 남 전사장은 박씨 등을 통해 현금 3,000만원을 건평씨에게 전달했다.그러나 남 전사장의 연임은 무산됐고, 건평씨는 지난해말 3,000만원을 되돌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남 전사장의 인사청탁 사건은 지난 11일 노 대통령의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졌고, 남 전사장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