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에서 일격을 당해 정권을 진보 진영에 내준 보수 정당 신한국당은 비록 패배는 했으나 김대중 정부를 5년 내내 강력하게 견제할 수 있었다. 그건 이회창이라는 유력 주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5년 뒤인 2002년 대선에서도 진보 진영에 패한 보수 정당 한나라당에는 박근혜라는 인물이 있어 노무현 정부를 강력히 견제할 수 있었다. 
이들의 당 지지율 제고를 위한 구심적 역할 덕에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은 보수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2007년(한나라당)과 2012년(새누리당) 거푸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2012 대선 이후 새누리당은 더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신할 만한 인물을 갖지 못했다. 차세대 기수를 키우지 않은 탓도 물론 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보수 인사들이 수구(守舊)가 아닌 보수의 가치를 고수하면서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실력을 쌓지 않은 것이 인물난의 배경이라 할 것이다. 
결국 한국당은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에서 이렇다 하는 대안 없이 진보 진영에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라도 궤멸되다시피 한 보수를 재건할 만한 인물을 선보였어야 했는데 ‘올드보이’들에게만 의지하다 지방선거에서마저 참패당했다. 
한국당의 헛다리짚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등 돌린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보기 위해 영입한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기껏 한다는 게 보수의 가치에 진보의 색깔을 덮어씌우려는 행태만 보이고 있다. ‘혹시나’ 했던 보수층이 이런 한국당에 마음을 열어 줄 턱이 없다.      
이는 최근에 나타난 여론조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지율은 일을 잘해서 오르기보다 상대방이 헛발질을 해서 얻는 ‘반사이익’이 오히려 더 큰 요소로 작용하는 터다. 2007년 대선과 2017년 조기 대선이 또한 그런 결과였다. 
한국당도 지난 두 달간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논란이 일었고, 실업률 상승 등 경제 전반에 빨간불이 켜졌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지면서 ‘북풍 효과’도 소진됐다. 여기에 북한산 석탄 밀반입 파동까지 터지면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여론은 악화됐다. 마침내 견고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 집권 여당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당의 지지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회심의 카드’로 들고 나온 ‘국가주의’ 논란이 현실과 동떨어진 고담준론(高談峻論) 수준에 머무른 데다 소속 당 의원들은 여전히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된 행태를 지지율 정체의 배경으로 꼽고 있다. 
틀린 말이 아닐 것이나 지지율이든, 정치적 수사든 간에 유권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하는 결정적 요소는 인물이다. 누가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누가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개혁을 하고, 누가 인적 쇄신의 기치를 높이 드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자칭 ‘보수정당의 보루’라고 하는 한국당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 진영 인사가 “보수여 나를 따르라”고 하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체성마저 헷갈리게 하는 정당을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지금 한국당은 겉으로는 고요한 듯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분열될지 모른다. 명분만 있으면 탈당하겠다는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당원들의 수가 급감해 곳간이 비고 있는 한국당 사정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 그런 정도면 차라리 정체성이 확실한 보수 세력이 규합해 새로운 정당으로 차기 총선을 대비하는 게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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