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9시. 여의도 증권거래소 객장이 술렁였다. 현대종합상사의 주식이 균등 감자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기 때문이다. 현대종합상사는 지난 2003년 6월부터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현대상사의 채권단은 외환은행(14.1%), 산업은행(22.5%), 우리은행(22.7%), 농협(10%) 등. 현대상사는 오는 2006년 말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이었다.이 루머가 퍼지자 현대종합상사의 주식은 단번에 하한가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 날, 전체 종합주가지수는 1,200선을 넘어서며 연일 고공행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하지만 감자설이 나돈 현대종합상사는 이 강세장 속에서 유일한 하한가 종목이 되고 말았다. 장이 마감된 오후 3시, 현대상사는 전일대비 14.95% 떨어진 5,640원을 기록했다. 이튿날인 지난달 29일에는 전날보다 6.91%나 빠졌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현대종합상사의 감자설이) 전혀 예상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시장의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그런데 증권가의 이런 반응에 못지 않게 충격을 받은 곳이 또 있었다. 바로 현대종합상사였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얘기가 나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권가에 나돌던 이 루머는 결국 사실로 밝혀졌고, 현대상사측의 충격은 더해만 갔다. 현재 이 회사에 대해 공동관리 중인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이 회사 주식을 3대 1로 감자키로 결정했다”며 “이사회 결의는 끝났고, 주총에서 정식으로 승인 받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말 현재, 이 회사의 자본금은 1,148억원. 출자전환해야하는 채무는 총 2,202억원이다. 현대상사가 이를 출자한 뒤 자본금을 3대1로 감자할 경우, 자본금은 1,116억원으로 줄어든다. 물론 한 회사의 자본금을 감자하고 말고는 주총의 의견이고, 또 현재 현대상사의 경영을 맡고 있는 채권단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는데 있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9월 중순. 현대종합상사는 ‘부활가’를 불렀었다.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을 천명했던 것이다. 현대상사는 지난달 12일에는 파나마미라이라는 회사로부터 일반 화물운반선 2척을 수주했었다. 이 회사가 지난 6월 중국 청도의 도시에 지사를 설립한 이래 첫 계약 건이었다. 일주일 뒤에는 신사업 진출 의사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현대’라는 이름을 내건 휴대폰 사업의 재진출이었다. 물론 현대상사측은 “현대가 본격적으로 휴대폰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주목했다. 현대가 국내가 아닌 인도,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카메라폰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채권단으로부터 선임된 전명헌 현대종합상사 사장의 ‘PR’전략도 한 몫을 했다. 전 사장은 지난달 26일, 개척할 신사업을 찾아보기 위해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현대상사의 직원들은 전 사장이 귀국 후 풀어놓은 보따리에 대해 무한한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상사의 한 관계자는 “올 들어 사장의 해외 출장이 부쩍 잦았다”며 “임원진들이 앞서 공격적인 마인드를 비쳐 회사 분위기가 고무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상사의 일련의 행동, 또 회사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현대상사는 경영 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 사장이 해외 출장길에 오른 지 하루 만인 지난 27일. 느닷없이 현대상사의 감자 소식이 전해졌으니 직원들의 충격이 이래저래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업계의 관심은 채권단에 쏟아졌다. 대체 왜 서둘러 ‘부활가’를 부르고 있는 현대종합상사의 자본금을 줄이기로 했느냐는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측은 공식적인 자료를 배포하지는 않았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여러 채권은행들이 모두 100% 합의해 이뤄졌으며, 정확한 이유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의 결정에 대해 M&A설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경우 실적이 호전되는 등 경영 정상화가 한창인 상황이어서 몇 몇 곳에서 인수를 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자면 몇 몇 회사가 현대상선에 눈독들이고 있는데, 인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본금을 줄여 합병하기 쉬운 절차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이번 감자가 장기적으로는 현대상사의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만일 이 같은 일이 이뤄진다면, 현대상사 채권단으로서는 적절한 인수자를 찾아 투입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고, 또 인수 의향자로서는 회사를 인수한 이후 빠른 경영 정상화를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얘기도 있다. 채권단과 전 사장간의 갈등설이다. 회사의 경영이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면서 채권단과 전 사장이 향후 회사의 방향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는 얘기. 전 사장이 해외 출장 중인 시점에서 채권단이 이를 발표했다는 점도 이런 시각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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