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과 신세계그룹이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경영권 승계 과정을 통해 이건희 회장과 이명희 회장의 경영마인드가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안기부 X-파일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편법 전환사채 발행 등이 문제가 되자 사재 8,000억 원을 털어 사회에 환원하는 땜질식 처방을 했다.

그러나 이명희 회장은 정용진 부사장의 광주신세계 증자참여 등이 문제가 되자 정공법을 택해 법대로 “1조원의 상속·증여세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의 땜질식 처방은 불씨를 끄지 못했지만, 신세계의 법대로는 투명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재계는 신세계를 따라 ‘법대로 상속’이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한마디로 재계에선 이건희 회장의 경영마인드 보다 이명희 회장이 한수 위라는 평가이다.





신세계 그룹은 “1조원의 상속·증여세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신세계가 증여세를 제대로 내고 정상적인 후계절차를 밟겠다는 뜻이다. 편법 경영권 승계가 기승을 부리던 재계에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삼성과 현대차도 ‘법대로 세금을 내겠다”고 발표하긴 했다. 하지만 모두 ‘사후 약방문’격이었다. 따라서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신세계를 모델로 삼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까지 하다.

“법대로 상속·증여세 내겠다”

지난 5월 11일 중국 상하이 이마트 싼린(三林)점 개점식에서 구학서 사장은 ‘깜짝 놀랄 만한 세금’발언을 했다. 이날 행사는 신세계를 상속하게 될 정용진 부사장도 참석했다. 구 사장은 오너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상속·증여세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신세계의 상속·증여세 발표는 이명희 회장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해 구 사장에게 “상속·증여세를 내더라도 경영권에 문제가 없지 않느냐”면서 “신세계는 상속·증여세를 떳떳하게 내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신세계 경영진들은 테스크포스트 팀을 꾸려 천문학적인 상속·증여세를 내는 방법과 시기를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회장은 오빠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불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에버랜드전환사채, e-삼성사건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신세계가 법대로 상속세를 내겠다”고 밝히는 것이 모양세가 좋지 않아 시기를 미루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사이 참여연대가 정용진 부사장을 광주신세계 유상증자 참여와 관련해 고발하는 상황에 이른다.

신세계는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여연대를 맞고소하면서 맞대응하고 나서는 한편 법대로 상속세를 내겠다고 발표했다.신세계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경영을 하고 있다. 이명희 회장은 회사의 경영과 관련 중요한 사안때는 직접을 하고 있다. 이번 문제도 회사 후계구도와 관련된 중요사안이기 때문에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울 때일수록 침착하고 정공법을 택하던 고 이병철 회장을 빼닮은 이 회장은 이번 결정도 부친의 경영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월 신세계 사보 기고를 통해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에 대한 경영 마인드를 자신의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이병철 회장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바로 세울 수 있는 용기와 옳지 않은 것에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분별력과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자비심과 포용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또한 그는 “약속은 책임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약속을 못 지킬 때는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약속을 안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글들은 고 이병철 회장이 항상 수첩에 적어 가지고 다니며, 경영 시금석으로 삼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희 회장도 이병철 회장의 유지를 받아들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법대로 상속세를 내기로 한 것이다. 일부에선 신세계의 이 같은 정공법을 폄훼하기도 한다. 한 재야 인사는 “때이른 양심고백은 어차피 법대로 상속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신세계의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세금을 내겠다”는 발언은 삼성·현대차그룹에 대한 검찰수사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울 때일수록 침착하게

이건희 회장은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발행과 e-삼성 사건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최근 삼성의 도마뱀론이 대두되고 있어 화제다.위기에 몰리면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 도마뱀처럼 삼성이 사법의 칼날이 목에 들어오자 먹은 재산의 일부(8,000억원)를 토해 냈다는 지적이다. 도마뱀론이 대두되고 있는 이유이다.

사실 과거 삼성은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자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한 바 있다.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가 사재 8,00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발표하던 날 신문 한쪽에는 검찰이 그룹의 총수 일가가 96년의 편법 증여에 개입한 정황을 밝힐 증거를 확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이 때문에 삼성이 검찰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8,000억원을 내놓았다는 의심을 지을 수 없다. 국민들도 삼성의 사회 환원 발표를 반기지 않고 있다. 재산헌납 발표가 하나같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당면한 위기 탈출의 한 방편으로 여론 무마용 보따리를 내놓았다는 비난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도 “이 정도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지는 상상도 못했다”면서 편법 상속 시도를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최근 신세계가 정공법을 택해 법대로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상속·증여세를 내기로 한 것이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자 삼성은 이를 벤치마킹하여 “법대로 상속세를 내겠다”는 입장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삼성 이회장이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경영마인드에 대해 한수 배운 셈이다.

삼성 이회장은 선친 고 이병철 회장의 “눈이 내릴 때 쓸어. 쌓이지 않게 해야 한다”는 홍보마인드를 그대로 경영에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편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본질인 상속·증여세를 법대로 낸다는 생각은 못한 채 당면한 위기 탈출만 생각해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여 여론을 무마시킨 뒤 도마뱀처럼 꼬리만 끊고 도망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상속·증여 과정에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삼성도 세금을 낼 때가 되면 법에 정해진 대로 당당하게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버랜드 건으로 삼성그룹의 경영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상속·증여는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면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사실 이 회장은 대한민국 재벌의 상징이다. 이병철 회장도 자서전<호암전기>를 통해 “삼성을 올바르게 보전시키는 일은 삼성을 지키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후계자의 선정에 덕망과 능력이 기준이 안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재산을 상속시키는 것보다 기업의 구심점으로 기업을 지휘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이 회장의 경영승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은 ‘신경영론’을 통해 국내 반도체 산업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 삼성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서 손색이 없는 강한 기업으로 키웠다.

삼성,뒤늦게 신세계 ‘벤치마킹’

재벌들은 경영권을 승계하며 정당하게 세금을 낸 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신세계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이명희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에게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발표가 이슈가 될 일도 아니다. 재벌마다 줄줄이 편법·불법 경영권 승계를 시도해 왔다. 사용된 수법은 다양했지만 공통된 점은 부당한 내부거래였다. 초보적인 방식은 회사 재산을 헐값으로 넘겨받고 자기 재산은 비싼 값에 회사에 넘기는 것.상장 주식은 객관적인 거래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거래가격이 불확실한 비상장 주식이나 전환사채와 같은 유가증권이 부당 거래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유행하는 불법 승계 방식은 상장회사에서 알짜 사업을 떼어내서 사주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기업을 만들어 일감을 몰아줘서 회사를 키워 상장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회사 기회의 편취’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5월 17일 성명서를 내고 “법과 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승계하겠다는 신세계와 삼성의 발표를 크게 환영한다”면서“ 이러한 재계의 변화가 한국경제에서 세금 없는 대물림을 근절하고 기업과 사회가 공동 번영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 전경련,상속세 폐지 및 세율 조정 요구재경부 “전경련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일축

전경련을 중심으로 상속·증여세 개정논의가 일고 있다.신세계의 법대로 상속·증여세 납부 발표가 있은 뒤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도 상속·증여세를 내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법대로가 사회여론을 타고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경련과 재경부를 중심으로 개정 논의가 일고 있는 것.삼성은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의 삼성전자 보유지분 약 390만주(2.65%)를 가지고 있다.

지난 15일 종가 기준으로 2조 5,000억원대이다. 이외에도 삼성 계열사와 비상장사 주식을 합치면 상속·증여할 주식만 수조원에 달한다.삼성전자 이재용 상무가 이를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 부담은 계상이 힘든 정도이다. 현금으로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주식으로 대납할 경우 이 상무는 삼성전자 주식1.3%정도를 받게 된다. 전경련은 “가뜩이나 경영권 불안에 시달리는 삼성전자의 상황을 감안하면 감내하기 어렵다”면서 “상속·증여세를 폐지할 수 없으면 세율을 대폭 낮춰 경영권 불안을 덜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경련은 상속세 인하 근거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웨덴 등이 상속증여세를 폐지한 점을 들고 있다.권혁세 재정경제부 재산소비세제국장은 “이들 나라의 소득세율 수준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우리나라와 다른 조세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들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했다.스웨덴의 경우 상속세는 없다. 매년 자산의 1.5%(법인은 0.15%)를 부유세로 부과한다.

프랑스도 소득세와는 별도로 연간소득의 0.55%~1.80%에 해당하는 부유세를 부과한다. 또한 캐나다와 호주는 상속세는 없으나 상속재산의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물리고 있다.또한 권국장은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물리고 있다. 상속세 폐지가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