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사의 한 획을 그은 만우 조홍제는 ‘거상 임상옥’에 비견되는 인물이다.그는 호세이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고 이병철 회장과 삼성을 창업했고, 효성을 창업한 인물이다. 삼성과 효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만우의 경영 철학과 기업가 정신이 밑바탕이 된 것이다. 만우는 1948년 호암과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삼성물산을 창업한다.

당시 국내 무역은 전무한 상태였다. 그는 ‘무역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큼 무역에 일가견이 있었다. 홍콩, 영국을 잇는 삼각무역을 통해 삼성의 성공 기틀을 마련한다. 지난 53~54년 호암과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한다. 그의 자로 잰 듯 섬세하고 빈틈없는 경영능력은 회사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바탕아래 삼성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호암은 동업관계를 청산하길 요구한다.

그는 호암의 요구에 미련 없이 삼성을 떠나 새로운 기업을 창업한다. 효성물산을 창업하고,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인수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56세. 창업하기엔 늦은 감이 있는 나이였다. 그는 “내가 살아오면서 내려야 했던 수많은 결단 가운데 가장 현명했던 것”이라고 그 때 당시를 회고했다. ‘때로는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고, 버리지 않는 것이 잃는 것이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만우는 지난 66년 첨단 수입대체산업인 나일론산업을 시작한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동양나이론 이후 한일나이론을 인수하면서 동양폴리에스터, 동양염공 그리고 토프론 등 화학섬유 관련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한다. 독자적 기술능력, 원가경쟁력과 일관생산체제로 우리나라 화학섬유 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지난 75년, 만우는 중화학공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하고 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전력 송배전망 선진화를 위해 한영공업을 인수, 효성중공업으로 개편한다.

이 시기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안에 그가 이끈 ‘효성’과 ‘삼성’이 나란히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성공한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세계적으로 당당히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재육성에 힘썼다. 사업 시작 후 그는 영남 장학회를 설립,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배명학원 이사장직을 맡아 후학들을 돌봤다. 사업에 위기가 닥쳐도 ‘인재육성이 우리조국이 나아갈 길’이라는 그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과감한 결단력과 신념은 오늘의 효성그룹을 있게 했고, 우리나라 기업가들에게 좋은 지침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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