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두산그룹이다. 올해로 110년을 맞은 지금, 두산 박씨一家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형제의 난’이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며 박용오·용성·용만 형제(사진)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분식 회계 등 각종 불법 행위가 밝혀졌다. 두산에 사회적 비판이 쏟아졌다. 박씨 형제들은 경영일선에서 동반 퇴진했다. 사태 수습차원에서 비상경영위원회 체제가 도입됐다. 이때부터 박씨家의 몰락이 예견됐다. 최근 3세들의 몰락을 대신할 4세 경영권 승계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두산의 경영권 향방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형제의 난’ 후폭풍이 일고 있다. 경영권 분쟁 이후 아직까지 그룹 회장 자리는 공석이다. 올해 안에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더라도 회장 자리는 비어있을 가능성이 높다.지난해 박용오·용성·용만 등 오너 3세간에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돈이 피보다 진하다’란 비난을 받으며 동반 몰락했다. 경영 수업을 쌓던 4세 경영체제마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 경영인 체제가 두산 경영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박용성 전회장은 “후손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업을 물려준다. 그렇지 않으면 과감히 전문경영인을 통해 가업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버지가 만든 기업을 아들이 망칠 수 있다.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 기업을 줄 순 없다.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을 통해 정상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재계에선 박 전회장의 ‘패밀리론’에 근거를 두어 전문 경영인 체제가 도입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4세 경영승계 조짐 보여

현재 두산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언제까지 전문경영인 체제가 이어질 것인가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박용성 전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이 박 전회장의 사람이라는 것. 박용성·용만 형제에 의해 오너 일가의 경영권 복귀가 물밑 추진되고 있다는 설이 재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두산이 지주회사가 되고, 3세 형제들과 4세들이 공동으로 (주)두산을 소유한 뒤 계열사를 거느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두산의 경영권을 승계받을 인물로는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 꼽힌다. 그가 고 박승직(창업주)-고 박두병(초대회장)-박용곤(명예회장)의 대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두산산업개발 경영을 통해 능력을 검증 받았다. 승계가 무리 없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그가 형제의 난으로 훼손된 두산의 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이다.

박정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박 부회장 외에 뚜렷하게 부상하는 인물도 없다. 박용오 전회장과 자녀들은 두산의 경영권에서 물러났다. 박 전회장과 자녀들은 두산관련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이로써 박 전회장 일가는 일시적으로나마 4세 경영에 종지부를 찍었다.한때 박용현 서울대 의대교수가 경영권 승계자로 점쳐졌지만 본인의 고사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진다. 두산산업개발은 ㈜두산을 지배하고, ㈜두산은 두산중공업을, 두산중공업은 다시 두산산업개발을 지배한다. 순환출자구도이다.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다. 순환출자 구도는 지분 확보가 쉽다.

한 회사만 장악해도 쉽게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박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선 현재 지주회사 전환이 시도되는 (주)두산의 지분을 매입하여 지배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재계에선 언제 박 부회장이 (주)두산의 지분을 매입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때부터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의 한 관계자는 “4세 중에는 박정원씨가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4세 경영권 승계라는 것은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됐다.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는 쉽지 않다. 피를 동반하는 숙청이 뒤따르는 왕권 다툼만큼이나 복잡한 파워게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경영권 분쟁은 형제와 자녀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두산그룹이 4세 경영이 확고해지기 위해선 상당 기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닥난 신뢰 회복 ‘급선무’

박 부회장이 경영권을 확고히 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영권 승계가 자칫 잘못하면 여론의 몰매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실추된 도덕성과 경영 투명성이 회복돼야 한다. 현재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3세 경영인 박용오·용성·용만 등에 대한 재판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울고법 형사1부(이인재 부장판사)는 지난 6월 30일 열린 공판에서 1995년부터 최근까지 회사 돈 286억원을 횡령하고 2,838억원의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박용오·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에게 각각 징역 6년을 구형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부회장에게는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투명 경영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에 역행해 수년간 기업을 좌지우지하면서 회사 돈을 횡령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이번 판결결과에 따라 재계에선 3세 경영시대가 끝나고 4세 경영자 시대가 급속도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다.지난해 두산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경영진 동반 퇴진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됐다.

도덕성이나 투명성은 땅에 떨어졌다.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비상경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두산은 성공적 경영성과를 냈다. 대우건설 M&A에 참여했고,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내 지주사 설립이후 현지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이미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각 계열사의 독립경영, 투명성·책임성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길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의 사건들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의 투명성·책임성 확립에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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