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투자증권사 직원 자살 파문
“사고의 원인은 과도한 업무를 부과한 회사에 있다.”“직장 다니는 사람 중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지난달 14일 여의도에 위치한 대한투자증권 본사 지하 체력단련실에서 이 회사 직원인 이종건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자살이지만 위와 같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노조와 사측의 시각차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노조 측은 “과로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며 이는 회사 측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측은 “직장 다니는 사람 중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입장이다. 분명한 것은 자본시장통합법을 앞두고 증권사나 은행 등 금융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업무강도가 상당히 높아졌고 개인이든, 사측이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모종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이 다시금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망한 고(故) 이종건씨는 1년전 대한투자증권 전주지점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업무 시간 이외에는 지역 와인동호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정도(회장)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직장에서의 대인관계도 원만했으며 집에서는 아내(교사)와 두 자녀의 가장으로서 큰 불화없이 화목하게 지내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런 이씨에게 갑자기 본사로 인사발령이 떨어졌다. 대한투자증권 서울 본사에서 증권사 각 영업지점들의 업무를 평가하고 지원하는 자산관리 지원부에 배치받게 된 것.


하루 평균 14시간 업무
이때부터 업무의 강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 평균 14시간 정도 일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도 따로 없었다. 거의 매일 11시가 넘어 퇴근해야 했다. 때로는 식사교대를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업무에 시달렸다. 회사 측에서는 전직원들에게 가급적이면 야근을 지양하라는 식의 권고를 해왔으나 주어진 업무의 양이 줄지 않은 상황에서 정시퇴근은 ‘그림의 떡’이었다. 게다가 이씨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업무에 대한 더 큰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이씨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담당의사는 우울증의 원인이 ‘과도한 업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라고 판단하고 3개월간의 휴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당시 의사가 쓴 소견서를 보면 ‘잠자리에 들면 회사일이 자주 생각나면서 뒤척인다’, ‘자살 충동이 많다’라고 쓰여있다. 이에 이씨는 진단서를 끊고 3개월 간의 병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자신의 일에 지장이 많을 것이라 판단한 이씨는 1개월만에 업무에 복귀했고 회사는 이씨를 홈페이지 개편 TFT(테스크 포스 팀)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짧은기간 안에 성과를 보여야 하는 TFT인 만큼 이곳에서의 업무 강도도 만만치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부적응을 불러왔다.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이씨는 지난달 14일(토요일) 회사에 출근해 지하 1층 체력단련실에 붙어있는 관리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씨는 문과 문틀 연결부에 혁대를 매달고 칼로 손목을 그은 채 목을 맸다. 그가 남긴 것은 ‘죄송하다’는 메모 하나뿐이었다.


누구 책임인가
대한투자증권 노조 측은 이번 사고가 “회사 측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며 산업재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 관계자는 “죽기 위해 한강변을 맴도는 사람 열의 아홉은 증권사 직원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증권사의 업무 강도는 센 편”이라며 “인력 증원 등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측의 주장에 따르면 증권사 직원들은 살인적인 업무를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체인력이 없어 마음놓고 휴식을 취할 틈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대한투자증권을 비롯한 타증권사에서 과로사로 인해 사망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지난 2004년에는 하나증권 부장급 직원 한 사람이 잠시 쉬겠다며 책상에 엎드린 이후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한 사례가 있었으며, 2005년 10월에는 우리투자증권의 한 직원이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자살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회사 측에 책임이 있다는 노조 측의주장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증권사 다니는 직원 중에 업무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고 11시까지 일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직원들에 대한 복리후생을 위해서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유족들과도 보상 문제에 대해서 협의하고 있는 중”이라며 “(회사 측에서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노조 측의 주장은) 노조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도 “회사 측의 얘기는 신병 30명을 땡볕 밑에 모아놓고 똑같이 교육시킨 후 한 사람만 쓰러지니까 나머지는 괜찮은데 너는 그 정도도 못 견디느냐는 것과 똑같은 논리”라고 반박했다.


-최근 몇 년간 증권사 직원 사망(사고) 사례

일시 사망원인
2002년 H증권사 직원,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 경색으로 사망
2003년 08월 C증권사 채권운용 직원, 스트레스 견디다 못해 뇌출혈로 쓰러짐
2004년 08월 하나증권 부장, 잠시 쉬겠다며 책상에 엎드렸다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
2004년 11월 SK증권 직원, 아파트 19층에서 투신, 고객과의 마찰, 사채업자 횡포
2005년 10월 우리투자증권 이모씨, 회사생활 어려움 호소하는 유서 남기고 자살
2006년 11월 브릿지 증권 직원, 뇌출혈과 심장마비로 사망
2007년 02월 대한투자증권 직원, 자택에서 돌연사
2007년 04월 대한투자증권 이종건씨, 회사 내에서 자살

<자료출처 :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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