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고정현 기자] ‘안희정 사태이후 쏟아졌던 미투 법안들이 철 지난 유행가처럼 잊히는 형국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최소 145건의 성범죄 관련 법안이 국회 캐비닛에 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미투 법안의 신속처리를 합의했음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막혀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에서 통과됐지만 법사위가 전체회의에서 계류시킨 미투 법안은 총 4건이다. 이 밖에도 100여 건이 넘는 미투 법안은 국회 사정 등으로 논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20183월 이후 현재까지 제출된 형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미투 법안으로 분류할 만한 법안을 정리해 봤다.
 

 

- 국회 상원법사위, 미투 법안에도 제동... ‘통과 0?
- 비동의 간음죄 신설·업무상 간음죄 처벌 강화·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부작용 없나

 

법사위는 9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여가위에서 통과된 이른바 미투 법안’ 4건을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해당 법안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 금지, 성폭력 사건 은폐·축소에 대한 처벌 규정 등을 골자로 하는 성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법 개정안 성인지 교육의 확대 및 성희롱 방지 조치 결과의 보고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 성폭력 2차 피해 대상에 정보통신망에 의한 피해를 포함하고, 여성가족부가 여성폭력 통계를 수집·공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안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등이다.

쏟아지는 미투 법안
개정 취지 살펴보니...

이 밖에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00여 건이 넘는 성범죄 관련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안이 80건으로 가장 많았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일부개정안(26),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일부개정안(20),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안(15) 순이었다.

2016년에 발의돼 2년 넘게 묵은 법안도 있다. 미투 법안들에 나타나는 경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 업무상 간음죄 처벌 강화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폐지 혹은 축소 적용 등이다.

먼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은 판례의 최협의설이 강간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을 좁게 해석해 강간죄 성립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홍철호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의안번호 : 2012532, 제안일 : 2018. 3. 19)사람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를 성폭력 범죄 요건에 포함됐다. 개정 대상 조문은 형법 제297, 297조의 2, 298조 및 제339조 등이다.

다만 해당 법안에 대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 정도의 기준반항의 가능 및 불가능 여부 판단에 대한 기준을 각 상황마다 명확히 일관적으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더 확실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무상 간음죄에 대한 처벌 강화 움직임은 안희정 사태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서 가해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려는 내용이 골자다. 권칠승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 2012439, 제안일 : 2018. 3. 12)에 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규정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했다. 개정 대상 조문은 형법 제303조다.

이명수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 2012507, 제안일 : 2018. 3. 16)에서도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현행 규정을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거나 사회적 지위 등을 이용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개정했다. 업무상 관계 외에 좀 더 포괄적으로 갑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 행위를 근절하고자 하는 취지로 분석된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기본권 침해 위험성 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폐지 혹은 축소 적용은 미투 폭로자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두텁게 보장하기 위해 현행법상 사실을 적시함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입법을 통해 배제하거나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이혜훈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 2012974, 제안일 : 2018. 4. 9)에 형법 상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유지하되, 그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사유를 현행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 더해 당사자의 법익 침해와 관련된 사안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집어넣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형사 처벌하는 사례가 드물며, 2015년 유엔 자유원위원회는 우리나라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다만 사생활에 대한 공연한 적시로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적지 않은 점,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처럼 형벌을 대체할 유효·적절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 등에 의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을 삭제할 경우 그 폐단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언급한 법안들 외에도 주광덕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 2014541, 제안일 : 2018. 7. 25)에는 성행위를 미성년자의 연령에 따라 세분화하여 13세 미만의 경우 무조건적 보호,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경우 신뢰관계에 있는 자와의 성관계로부터 보호, 16세 이상 19세 미만의 경우 신뢰관계에 있는 자가 그 신뢰관계에 의한 지위를 이용한 성관계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형법 제305조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규율함에 있어서 합의에 의한 성행위의 경우 13세 미만의 사람()을 그 보호 객체로 한정하고 있어 13세 이상 청소년의 성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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