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이학수 자수서·이팔성 비망록이 핵심 증거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이학수 자수서·이팔성 비망록이 핵심 증거였다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8-10-06 17:17
  • 승인 2018.10.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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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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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이명박(77) 전 대통령에게 85억원대 뇌물이 인정된 배경에는 이학수(72)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남긴 증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법원은 이 전 부회장의 자수서와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을 토대로 이 전 대통령에게 수십억 상당의 뇌물이 전달됐다고 봤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전날 이 전 대통령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사건 선고 공판에서 이 전 대통령의 뇌물 액수를 총 85억원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삼성에서 지원받은 다스 미국 소송 비용 61억여원과 이 전 회장이 보직 임명 등을 대가로 건넨 19억원을 유죄로 인정했다.

여기에 원세훈(67) 전 국정원장에게 받은 1억원과 김소남(69)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공천 대가로 받은 4억원도 뇌물로 판단했다.

인정된 뇌물 대부분은 삼성과 이 전 회장에게서 받은 금액으로, 관련자들이 내놓은 증거들이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다스 소송을 맡았던 김석한 변호사가 2008년 3~4월 이 전 대통령을 만나 삼성의 지원 의사를 전달했고, 이 전 대통령이 삼성에서 소송 비용을 대신 내줬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삼성에 비자금 특검과 금산분리 완화 관련 현안이 있었고, 실제 이건희 회장이 특별사면되고 이 전 대통령 임기 내 금산분리 완화 입법이 이뤄지는 등 대가성도 있었다고 봤다. 

이를 토대로 김 변호사가 이 전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부터 2011년 3월까지 삼성에서 지급한 소송비용 61억2900여만원 상당을 뇌물로 인정했다.

그 근거로 '이학수 자수서'를 들었다. 검찰이 지난 7월10일 열린 재판에서 공개한 자수서에 따르면 이 전 부회장은 "김 변호사에게 부탁을 받고 이 전 대통령의 미국 내 법률문제 소요 비용을 삼성에서 대신 납부하게 한 적이 있다"고 적어 냈다.

재판부는 이 자수서를 토대로 "이 전 부회장은 2007년 하반기 김 변호사로부터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 승인을 받았다고 자백했다"며 "삼성전자를 통해 미국 법률사무소에 송금한 내역을 특정해 제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이 "스토리 자체가 거짓"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은 이 전 부회장이 허위 자백을 했고 진술이 바뀌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전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임직원들 전체가 허위자백을 할 만한 사정을 발견하기 어렵다"라며 "이 전 부회장 진술은 증거가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추가로 범행을 인정한 취지라고 보여진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통령이 거짓말이라며 부인한 '이팔성 비망록'도 뇌물 입증에 강력한 증거가 됐다.

검찰이 확보한 이 전 회장의 비망록과 메모에는 인사청탁과 금전 공여를 둘러싼 경위, 당시 심경 등이 날짜별로 소상히 담겼다.

"이명박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건 왜일까"(2008년 3월23일), "김윤옥 여사님 생신. 김희중 비서관 통해 일본 여행 중 산 시세이도 코스메틱 16만엔 선물로 보냄"(2008년 3월26일),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2008년 3월28일) 등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법원은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이 신빙성이 있으며, 이 전 대통령이 보직 임명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건넨 뇌물 액수와 일시를 기재한 메모가 다수 발견됐고, 이 전 회장이 작성한 일기 형식의 비망록이 압수됐다"며 "그 안에는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인사청탁을 한 내용, 뇌물을 줬는데 자신의 인사가 결정되지 않은 점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내용이 기재돼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메모나 비망록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며 "이 전 회장이 국회의원이나 주요 금융기관장 등에 임명해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직접 "차라리 이팔성을 불러 거짓말탐지기로 확인했으면 좋겠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측근들이 내놓은 증거는 결국 이 전 대통령을 사면초가로 몰아 퇴로를 차단했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을 선고하고 82억7000여만원을 추징했다. 이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과 상의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