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질적인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작년의 국정감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 만에 실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에 대한 국정감사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 공격권을 행사한 쪽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었으며 이에 행정부가 합세하여 전 정권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공세를 가했고,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의 실정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 정부 여당은 일자리 창출이나 부동산 값 안정, 자영업자 대책 등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등한시하고, 오로지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모든 문제를 풀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차방정식으로 정국을 대응하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임명은 그러한 오만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국정감사 첫 날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일주일전 평양을 다녀온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우리가 금강산관광을 못하는 것은 유엔제재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5.24조치 때문 아니냐. 5.24조치 해제 용의가 있느냐”는 질의에, “네, 관련 부처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하며,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독자적 대북제재를 폐기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답변을 하였다.

이후 이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가 거듭되자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한 게 아니다”, “분명하지 않고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데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떨궜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실시된 국정감사장에서 한 자신의 발언을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부정한 것이다. 우리나라 외교부장관의 실력이 이 정도이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장관 발언의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있었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5.24조치의 주무 부서인 통일부의 조명균 장관은 “5.24 조치 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면서, “원인이 된 천안함 문제와 관련해 북측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해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여야정의 공방에 기름을 부은 것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발언을 전해들은 기자의 질문에, “Well, 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 They do nothing without our approval.”(“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주권국인 대한민국의 자주적인 조치에 대해 미국이 감히 승인(approval)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느냐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야권에서는 미국의 분명한 입장을 듣고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트럼프가 사용한 approval은 승인의 의미가 아니라 동의 정도의 의미라며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논조를 전개하기도 한다.

나는 영어학자도 아니고 영어실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그러나 한글에 대한 해석은 남 못지않게 할 수 있다. 승인이란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허가하는 행위다. 동의란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인정하거나 시인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한 인정의 동의보다 행위가 포함되는 승인이 보다 적극적인 개념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의 자주적 행위가 미국의 승인이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법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 정부가 하는 행위에 대한 승인과 동의를 할 수 있는 기관은 오직 우리나라 국회밖에 없다. 그것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독립된 국가인가? 대한민국과 북한은 자주적 통일이 가능한가? 이제 우리 정부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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