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고정현 기자] 국회의원들에게 쌈짓돈 만들기는 일도 아닌 듯하다.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에 이어 이번엔 국회 연구비까지 의원들의 쌈짓돈으로 유용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회 연구비란 좋은 정책과 법안을 만들라고 의원들에게 세비와는 별도로 지원되는 입법 및 정책 개발비를 말한다. 그런데 정작 일부 의원들은 이 돈을 연구비 등으로 쓰겠다고 받아간 뒤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된 것. 현재 시민단체는 공금횡령과 다름이 없다며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국회 연구비횡령 실태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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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 1200만 원·백재현 500만 원, ‘내부자끼리 연구비
- “관행대로 했을 뿐”, “도와 달래서” “전임 보좌관 때 일핑계 대기 급급


지난 75, 서울고등법원 행정 3(문용선 부장판사)는 국회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에 이어 국회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 관련 자료도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승수 세금도둑 잡아라공동대표가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국회 측의 항소를 기각한 것이다.

이후 두 달 여가 흐른 지난 95, 국회로부터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하 대표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86억 원의 국회 입법·정책개발비가 떡값·밥값으로 유용되거나 표절보고서에 지급되는 등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 1017, 하 대표의 말대로 입법 및 정책 개발비2의 특수활동비로 악용되고 있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MBC와 뉴스타파는 이날 “20대 국회의원들의 한 해 130억 원 규모의 정책개발비 예산집행 관련 서류를 입수, 분석한 결과 각종 불법과 편법, 비리, 반칙행위가 오롯이 드러났다며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자유한국당 이은재·강석진, 무소속 서청원 의원을 지목했다.


가족·지인 나눠먹기’·
'허위 보고서’·‘표절
혈세 수천만 원 펑펑


보도에 따르면 이은재 의원실은 제3자 계좌를 차용, 국회 예산을 1000만 원 이상 빼돌렸다. 이 의원은 지난 20169국가정보활동 관련 국내외 입법례 및 판례 동향이라는 소규모 연구 용역을 진행했는데 연구 수행자는 자유 기고자 홍모씨로 연구비는 500만 원이 지급됐다.

이 의원은 지난 201711월에도 홍 씨에게 다른 업무를 맡기며 500만 원을, 비슷한 시기에 또다시 홍 씨에게 연구를 맡기고 220만 원을 지급했다. 1년 동안 홍 씨에게 지급된 연구비만 1220만 원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홍 씨가 3건의 연구를 하지 않았고 이은재 의원실에 계좌만 빌려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홍 씨는 용역 결과물을 공개해 달라는 언론사의 요청에 보좌관 친구의 부탁으로 계좌만 빌려준 것이라면서 이은재 의원실과 전혀 관계없다고 말했다.

또 지급받은 연구비도 보좌관 친구에게 모두 보내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은재 의원실 보좌관은 관행대로 해 왔다. 편법을 쓴 건 잘못이라면서도 돌려받은 연구비는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고 의원실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총선 당시 자신의 선거 운동원이 만든 정체불명의 단체에 국회 예산 수천만 원을 몰아줬으며 의원실 소속 대학생 입법보조원에게는 연구비 500만 원을 지급한 뒤 돌려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백 의원은 지난 2012~2017년 한국경영기술포럼이라는 단체에 8건의 정책 연구 용역을 맡겼고 건당 500만 원씩, 모두 4000만 원의 국회 예산이 지급됐다. 하지만 이 단체는 사업자, 법인 등록도 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단체였다.

더욱이 이 단체 책임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려 연구비를 타낸 고모씨는 지난 총선 당시 백 의원의 선거 운동원이었던 것으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백 의원실 측은 “(고 씨가) 선거 때 도와준 적이 있다. 이 사람이 우리 보고 취업시켜주란 소리도 많이 했는데 우리가 취업도 못 시켜준다. 그러면 아르바이트를, 이런 미션을 해 달라고 부탁드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 씨도 “(백재현 의원과) 같은 지역구이다 보니까 도와 달라고 하시면 형편이 안 좋은 것을 아니까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백 의원실이 입법보조원에게 연구비를 지급한 뒤 돌려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백 의원실은 연구 주제가 민감해 실제 연구자가 신원 노출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입법보조원인 채 씨에게 돈을 지급했고, 채 씨가 그 돈을 연구자한테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채 씨는 백 의원실이 실제 연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세금을 떼고 들어온 470~480만 원 상당을 현금으로 전액 인출해 보좌관한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강석진, ‘허위 보고서로 받은
연구비 인건비로 지출

강석진 한국당 의원실은 지난 20165건의 정책연구 용역과 3건의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국회사무처로부터 받은 1100여만 원을 당시 의원실 업무를 보조하던 비서관 가족과 대학생 등 비정규 인력의 인건비로 편법 지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은 보좌관과 비서관 등 유급 보좌진을 모두 9명까지 둘 수 있다. 이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이 외에 추가로 인력이 필요할 경우엔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의 월급인 세비 혹은 후원금을 통해 이를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강석진 의원실은 소규모 정책연구 용역비를 편법 활용해 단기 비정규 인력의 인건비를 지급했다는 의혹이다.

강 의원실의 정책연구 보고서 2건을 쓴 제약사 여직원 신모씨는 비서관 홍모씨의 아내이고, 또 다른 2건의 보고서를 쓴 해양생물 연구개발업체 연구원 홍 모 씨는 당시 강 의원실에서 무급 비정규 비서관으로 일하던 홍모씨의 친형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강 의원이 자신의 월급인 세비 혹은 후원금이 아닌 정책 연구비로 인건비를 대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박모 선임보좌관을 비롯한 강 의원실의 보좌진이었지만 외부 연구자가 쓴 보고서 형태로 편집한 뒤, 이를 홍 씨의 아내 신 씨와 친형 홍 씨가 작성한 용역 보고서인 것처럼 정리해 국회사무처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강 의원실이 이처럼 연구자 이름이 허위로 기재된 보고서를 제출해 국회사무처로부터 850만 원의 예산을 지급받았고 이 자금을 서류상 연구자인 신 씨와 홍 씨에게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상 이 자금은 신 씨의 남편이자 홍 씨의 친동생이던 당시 무급 비정규 비서관 홍모씨의 인건비로 지급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강석진 의원실은 연구용역비로 비정규 인력 인건비를 편법 지급했다는 점은 시인했으나 전임 보좌진들이 저지른 잘못이었다며 책임 소재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서청원 무소속 의원은 정책 연구 용역을 해당 분야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게 맡겼는데 해당 연구용역에 국회 예산 1000만 원이 소요됐다고 뉴스타파와 MBC는 전했다. 비전문가에게 용역을 맡긴 경위에 대해 서청원 의원실은 “‘스펙 타파라는 취지를 살려 각계 다양한 입장을 들으려는 취지였다라며 학계와 주변의 추천을 받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책연구를 맡겼다고 주장했다.


토씨까지 베껴도...
지인에게 혈세 펑펑

한편 자유한국당 정종섭·김학용,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과 농림축산식품부 이개호 장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먼저 정종섭 의원과 이개호 장관이 펴낸 정책 보고서는 통째로 베낀 수준의 심각한 표절이 발견됐는데도 이들 모두 혈세를 지급받았다.

정 의원은 지난 201612정치 관계법 개정 방향에 관한 정책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연구를 맡은 사람은 당시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이었던 김모씨다. 김 씨는 정종섭 의원의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정 의원의 제자였다. 김 씨에게는 국회 예산 100만 원이 연구비로 지급됐다.

그런데 해당 보고서의 2장은, 4년 전 경북대 학술지에 게재된 학술논문과 정확히 일치했다. 보고서 3장과 4장도 넉 달 전에 나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베꼈다.

이 장관은 2016319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두고 친환경 농산물 중국 수출을 주제로 한 정책 연구 용역을 진행했고 조모씨에게 연구 용역을 맡긴 뒤 3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 내용은 2년 전 조 씨 본인이 발표한 정책 연구를 서론부터 결론까지 100%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조모씨는 자신의 지역구와 가까운 광주 전남 연구원 소속이다.

김학용 의원과 김영진 의원은 전직 인턴이나 친구 등에게 정책연구를 맡기고 연구용역비 수백만 원씩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 의원은 지난 201612‘2016년도 정책설문조사라는 정책 연구 용역을 송모씨에게 맡겼다. 이 정책연구 용역에는 국회 예산 230만 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송모씨는 자신의 의원실에서 일하던 전직 인턴 비서인 것으로 확인됐다. 송 씨가 작성했다는 보고서 역시 이미 한 달 전인 201611월 김학용 의원실이 냈던 보도자료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영진 의원은 지난 2016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이라는 정책 연구를 89년생 김모씨에게 맡겼다. 국회 정책 개발비 180만 원이 지급됐다.

그런데 김 씨의 직업은 김영진 의원실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모 회계법인의 회계사였다.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정책 연구를 회계사에게 맡긴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김 씨는 해당 회계법인에 다닌 적도, 공인회계사로 등록된 적도 없는 사람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김영진 의원실의 전직 인턴 비서였다. 자기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사람에게 연구 용역을 맡겨놓고는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서류에는 직업을 회계사로 기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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