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트 시 ‘기대득점’(예상 득점) 오히려 떨어져
타격 2위, 방어율 9위 팀, 초반 1점 집착은 고심해야 할 부분

지난 15일 오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8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미디어데이'에서 KIA 김기태 감독이 각오를 밝히고 있다. [뉴시스]
지난 15일 오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8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 미디어데이'에서 KIA 김기태 감독이 각오를 밝히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 신희철 기자] 지난 16KBO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아찔한 장면이 나왔다. 상황은 5회 초 KIA 김선빈 타석. 주자 무사 1루에 점수는 0-0. 팽팽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김선빈은 여지없이 번트 모션을 취했다.

 

그런데 하필 브리검의 공이 김선빈의 몸 쪽을 향해 날아왔다. 딱 소리와 함께 김선빈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며 얼굴은 일그러졌다. 고척 돔을 채운 수많은 KIA팬들의 탄성과 우려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느린 장면이 나오자 탄성은 더 크게 변했다. 번트 모션을 취한 김선빈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기 때문에 몸 쪽 공을 피하기 힘든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공이 그대로 김선빈의 왼쪽 손등을 강타한 것이다. 그것도 배트를 손에 쥔 상태에서 말이다. 공의 위력이 왼쪽 손등을 강타했고 그 충격이 퍼지지 않고 배트에서 다시 김선빈의 손으로 튕겨졌다. 보는 이들 모두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김선빈은 곧바로 황윤호로 교체됐다.

 

KIA로서는 다행히 후속타자 최형우가 2타점 적시타를 쳐서 2-0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김선빈이 쓰러지는 모습은 KIA팬들에게 복선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복선은 여지없이 다음 회에 실현되고 말았다. 대수비로 들어온 황윤호는 큰 경기 경험이 적었다. 그만큼 부담은 컸다. 그리고 비교적 평범한 내야 땅볼을 그대로 실수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5회 말에만 KIA는 넥센에게 대거 5점을 실점했다. 물론 김민식 포수의 어이없는 실책이 더 결정적이었지만, 황윤호의 실책은 주전 김선빈이 불의의 사고로 빠진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김선빈의 부상은 KIA에게 더욱 뼈아픈 상황이 되었다.

 

이날 김선빈의 부상과 황윤호의 실수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선빈의 부상 과정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번트작전만 나오지 않았더라도 김선빈의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사 1루에서 김기태 감독을 왜 번트를 지시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KIA팬들이 더 잘 알 듯 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거의 습관적이다. 김 감독은 무사 1루나 2루에서 큰 점수 차로 이기거나 지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지없이 번트를 지시한다. 올 시즌 KIA의 희생번트 기록만 봐도 삼성에 이은 2위다.

 

김선빈의 이날 번트 작전과 부상은 그야말로 김기태 야구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여기서 현대야구의 번트 작전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 현재 KBO리그에서 번트 작전은 모순

 

두 가지 측면에서 번트 야구의 모순을 설명하고 싶다.

 

첫째로 우선 번트로 인한 기대득점득점확률의 통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번트 댔을 경우와 대지 않았을 경우 예상되는 득점’, 혹은 득점할 확률을 고려해야 한다.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를 보자. 1990년대 초반 아메리칸리그 경기당 희생번트는 0.30개 정도. 2016년 이후에는 0.14개로 그 절반 이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게 하는 팀들이 더 많이 이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야구는 갈수록 장타와 출루가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굳이 메이저리그의 경우를 보지 않더라도 답은 나와있다. 번트 시 기대득점’(예상 득점)은 무사 1, 무사 2, 무사 1, 2루 등 어떠한 경우에도 더 떨어진다. 물론 득점확률’(득점할 확률)은 경우에 따라 높아진다. 하지만 그것도 무사 1, 2루에서 12, 3루가 됐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무사 1, 12루의 경우는 오히려 전자가 득점 확률도 높다결론은 명확하다. 번트로 인해 경우에 따라 득점확률은 높아질지언정 기대득점은 오히려 떨어진다. 즉 전체점수는 오히려 적게 난다는 뜻이다.

 

물론 번트가 무조건 배제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경기 후반 1점이 중요한 경우, 1점으로 경기가 끝나는 경우, 마무리가 적은 점수 차이를 지킬 확률이 큰 경우 등 짜내기 상황에선 번트도 필요하다. 하지만 경기 초반부터 무조건 번트를 대고 보는 것은 고민해 봐야 한다. ‘기대득점이 오히려 더 떨어짐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고, 직관적으로 점수가 더 안 난다는 것은 일반 팬들도 알고 있다. 그런대도 김기태 감독이 관성적으로 번트를 대는 이유는 무엇일까김 감독만 번트작전이 오히려 점수가 더 적게 난다는 모순을 모르는 것일까. 현재 KBO리그에서의 번트는 오히려 상대팀을 편하게 해준다.

 

두 번째 측면은 더 중요하다. 많은 야구팬들도 알다시피 2014년부터 한국 야구는 타고투저 현상이 지배하고 있다. 방어율 3점대면 각 팀의 1, 2 선발에 들 정도다. 이에 반해 3할 타자는 매년 30여 명을 웃돌고 있다. 한 팀에 3할 타자가 즐비하다. 평균적으론 3명 정도다. 1점이 갈수록 중요하지 않은 추세인 것이다. 한 이닝에 3점 이상 나오는 빅 이닝은 수도 없이 많다. 게다가 불펜, 마무리가 전반적으로 약해진 한국 야구다. 3점도 안심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다.

 

게다가 KIA는 올 시즌 방어율 10개 팀 중 전체 9위다. 3점은커녕 5점도 안심하지 못하는 팀이 KIA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작년 우승 시즌에도 약한 불펜은 계속 지적됐다. 그런데도 김 감독만 KIA불펜을 다저스 불펜으로 착각하는 것일까언제든 5점 이하의 점수 차는 역전될 수 있고 역전되는 것을 무수히 경험했다. 그런데도 초반부터 1점 짜내기 야구를 위해 번트를 대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도일까. 1아웃을 그대로 헌납하면서 1점까지 선취하면 그 1점에 가중치라도 붙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현재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KBO와 달리 현재 투고타저 추세이다. 게다가 포스트시즌은 선발투수들을 불펜으로까지 돌리면서 최대한 짜내기 승부를 편다. 따라서 정규시즌보다도 점수내기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다저스와 밀워키의 경기에서 번트는 나오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감독들과 구단이 바보여서 번트를 안 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누적된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확률적인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 학습을 했다면 변해야 한다

 

KIA에게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경기 초반 패턴이 있다. 무사 주자 1, 2루 혹은 1, 2루에서의 번트.

 

고작 1점 혹은 선취점을 내기 위해 소중한 1아웃을 희생하는 것이 승리에 더 도움 되는 지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과는 통계에 수렴하게 돼 있다.

 

이제 김기태 감독도 3년의 경험이 누적됐다. 그동안의 무수한 경험이 깨달음을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KIA의 타자들이 번트 자세와 타격 자세를 오가면서 2스트라이크로 타석을 시작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타격 자세와 번트 자세를 오가며 좋은 공은 놓치고, 어설픈 자세로 파울볼을 만드는 장면. 불리한 카운트에서 여지 없이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나는 장면. KIA팬들에겐 익숙할 것이다. 정 번트 작전을 내려면 번트에 약한 선수에게는 차라리 타석에 들어올 때부터 번트 자세를 취하게 했으면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선수가 마음껏 치도록 기회를 줬으면 한다. 아무도 속지 않는 어정쩡한 자세로 타자들의 타격 밸런스만 붕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타자들을 믿었으면 한다. KIA는 작년 팀 타격 1, 올 시즌 팀 타격 2위의 타격이 강한 팀이다. 이제 현대야구의 장타와 출루의 높은 기대득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 회에 5점도 마음놓지 못하는 불펜을 보유한 팀이 언제까지 초반 짜내기 1점에 연연할 것인가.

 

학습은 실천했을 때 학습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3년이면 학습을 하기에 충분히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김기태 감독, 이제는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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