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50년 이상 역사를 지닌 한남동 정보분실이 폐쇄된다. 경찰개혁위는 경찰 정보의 ‘헤드쿼터’(본부) 역할을 해 온 한남동 분실을 본청에 옮기고 이달 말부터 폐쇄 작업에 들어갔다. 한남동 분실은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동향을 파악해 윗선에 보고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사회 저명인사에 대한 동향 파악은 자칫 사찰로 비춰지거나 정적을 제거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남동 분실 폐쇄에 따른 본청 정보관의 활동 역시 상당히 위축될 전망이다. 전국 3300명의 정보관을 가진 경찰의 변화된 정보 현실을 짚어보자.


- 경찰개혁방안 세종 분실 ‘잔존’ 27개 대공 분실 ‘이관’
-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양 핵심 키 국정원법 ‘계류 중’


경찰개혁위원회는 올해 4월말 ‘경찰정보활동개혁방안’을 발표했고 경찰은 이를 전격 수용하기로 했다. 핵심 내용은 정보경찰 개혁과 보안경찰 개혁 부분이다. 정보경찰 개혁의 핵심 내용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국회·정당을 상시출입 하는 국회 정보관(IO: information officer)을 폐지했다. 다만 필수적인 인원은 기획조정관 소속 국회과로 남겨뒀다. 또한 한남동 정보분실을 경찰청 청사 내로 이관시키고 10월 내 폐쇄하기고 결정했다.

주목할 점은 한남동 정보분실의 폐쇄 결정이다. 정보분실이란 정보국 외근 요원들이 정보활동을 하면서 거점으로 사용하는 장소다. 따로 사무실을 둬서 비밀스럽게 활동을 한다. 한남동 분실의 경우 10년 이상 정보활동 경력을 가진 베테랑 정보관 30여 명이 상주해 활동했다. 경찰청 정보국 산하 정보분실이지만 위상은 남달랐다.

‘한남동팀’ 폐쇄...
전국 광역청 정보관역

일명 ‘한남동팀’으로 불리는데 정치·행정 1분실, 경제·노동 2분실, 시민단체·학원·종교 3분실로 영역을 나눠 동향 파악 및 첩보 활동을 벌여 본청에 보고해 왔다. 특히 1분실 소속 국회팀은 본청 국회 출입 정보국 직원과 함께 국정감사 시즌이나 경찰청과 지방청 등에 대한 국회의원 질의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예산안이 마련되는 시기엔 경찰 관련 예산의 증감 여부를 살펴 경찰청에 보고한다.

이뿐만 아니라 장차관급 이상 인사청문회가 있을 경우에는 후보자에 대한 평판조사나 첩보를 벌여 윗선에 보고하고 이는 청와대 인사팀까지 보고서가 올라갔다. 국회 자체가 각종 정보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이 국회 출입하는 정보관 축소와 더불어 한남동 분실 폐쇄를 결정하면서 정보 활동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본지 취재 결과 국회 출입 경찰 정보관들은 과거 여야 합쳐 10여 명 수준이 활동을 했지만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1명, 자유한국당 1명, 기타 야당 1명으로 총 3명의 경찰 파견 국회과 소속 인원이 다다. 민주당 의원 129명, 한국당  112명을 한 명이 담당하기는 벅찬 게 현실이다.

하지만 국회 관계자들은 겉으로 정보관들이 사라졌지만 전국 광역 단위 경찰청 소속 정보관들이 대신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변한 것은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회 출입 경찰정보관이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를 지방 광역경찰청 산하 정보관들의 위상과 역할이 높아졌다”며 “본청 파견 경찰정보국들은 자료 제출 지원 수준이라면 지방청에서 활동하는 정보관들이 옛 국회 출입 정보관들이 하던 일을 대신할 공산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편 한남동 정보 분실은 사라지지만 세종분실은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세종분실은 정부청사가 있는 만큼 대정부 지원 역할 수준에서 존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경찰 개혁의 또 다른 한 축은 보안경찰 개혁이다. 그 일환으로 보안 분실의 폐쇄도 추진하고 있다. 경찰개혁위 보고서를 보면 권고안 수준이지만 전국 27개 경찰청 보안과에서 비밀스럽게 운영해온 경찰청·경찰서 외 전국 곳곳에 소재한 대공분실을 청사 내로 옮길 것을 권고했다.

보안분실 혹은 대공 분실로 불리는데 주로 역할은 국내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보안법 사건이나 간첩 사건을 외부에 소재한 곳에서 첩보활동과 내사를 벌여왔다. 그 대표적인 게 남영동 분실이다.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개혁위는 보안경찰 개혁관련 ‘안보사건 평가위’를 신설해 보안수사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대내외 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장기 내사사건과 국보법 위반사건 입건 여부를 심의 평가하는 위원회다. 인권보호 차원에서 ‘내사일몰제’를 도입해 6개월 이상 내사는 원칙적으로 종결할 것을 권고해 불필요한 장기 내사를 근절하기로 했다.

또한 ‘이적표현물 감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이적 표현물 감정의 객관성·공정성 확보를 하기로 했다. 과거처럼 엄격한 이적표현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기로 한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보안분실은 경북 울산 등 3개 보수대 청사 내 이전을 완료하기로 적시했다.

이처럼 경찰이 정보 파트와 대공 파트를 스스로 축소하고 개혁을 수용하기로 한 배경에는 현재 진행되는 국정원 소관의 대공수사권 이양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재편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양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놨다.

대공수사권 이양의 밑그름은 당초 국정원과 검경이 해오던 대공·안보 수사를 경찰청 산하 안보수사처를 만들어 한 데 모으기로 했다.

현재는 관련기관 협의를 통해 안보수사본부로 명칭은 바뀌었고 경찰청 산하에 두되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대공수사권 이양을 위한 법안 처리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로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 관련 법은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올해 초 대표 발의했다. 이 법에 따르면 대공·대정부전복 등과 관련한 국내 보안정보 수집 업무와 이와 관련한 수사권 조항을 삭제해 대공수사권 이양이 가능한 토대를 만들었다. 경찰 부문 관련해서도 진선미 현 여성가족부장관이 의원이던 시절인 3월 경찰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해 경찰청 산하에 안보수사본부를 두도록 했다.
 
‘대공파트’ 이양·축소中
 관련법 ‘표류’ 안보 공백상태


관련법에 따르면 안보수사본부장은 내란·외환·반란의 죄는 물론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 및 북한과 연계된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수사를 관장한다. 문제는 국회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법관련법안은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3차례 이상 논의됐지만 여야 간 의견충돌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경찰법 개정안은 아직 소위에서도 논의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개혁위는 대공 파트 관련 업무를 축소해 대공수사권 이양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막상 관련 법안 통과가 더디면서 대공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는 게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 대공수사관련 핵심 부서인 국정원 역시 어차피 경찰로 이관되는 마당에 예전처럼 발 빠른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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