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대학후배 최측근 박철언 전 보좌관 김호규씨 직격인터뷰


‘6공 황태자’ 박철언 170억 여교수 송사는 곁가지

“박철언 전 장관은 H, S, D, L그룹 등 대기업으로부터 수 백 억 원대의 돈을 받는 등 대략 2000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했다.” 비자금관리 의혹에 휩싸인 ‘6공 황태자’ 박철언 전 장관의 최측근 보좌관이 이 같은 사실을 주장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이 같은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문제의 자금들은 유산과 친·인척 자금, 후원자, 협찬자 등 대가 없는 기부금 등으로 복지통일재단 설립을 위한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박철언 비자금'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고,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미국에 수조원의 괴자금이 있어 이를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파문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자금 수사가 본격화할 경우 전직대통령들의 비자금 의혹으로 번지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박 전 장관의 고교·대학후배로 자유총연맹 이사장, 서울신문 사장 비서실장, 월계수회(박 전 장관의 사조직) 조직관리, 국회 보좌관 등을 지낸 김호규(58)씨는 지난 5일 오후 여의도 K일식집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진실 밝히는 게 사회적 의무”

김씨는 “15년을 모셨던 선배이고, 이번 인터뷰로 동문사회(TK) 따돌림도 걱정되지만, 무용과 여교수 170억 송사를 계기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인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며 심경을 고백했다.

김씨는 “1988~89년 당시 박 전 장관은 청와대 정책보좌관 겸 국회의원이던 권력 실세로 선거철마다 대기업들이 뭉칫돈을 들고 찾아왔으며 당시 공천장사로도 대구지역에서만 80억 이상을 벌어들인 걸로 안다”며 “박 전 장관이 조성한 비자금은 대기업과 공천장사 등 정재계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한번은 수표다발이 너무 많아서 ‘무슨 돈입니까’라고 물으니 이 자금 중 일부는 영부인(당시 김옥숙 여사)의 것이 포함돼 있다”며 “박 전 장관은 본인에게 직접 불법자금이니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2번, 3번 이상 다단계 세탁한 후 본인의 친인척 명의의 구좌에 차명 예금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1988~89년은 금융실명제 시행 전으로 당시 수표뭉치를 서울 시내 여러 은행과 증권사에 여러 개의 가명예금 구좌를 개설해 일단 그 가명 예금 구좌에 수표를 입금시킨 후 모두 현금으로 여러 차례 1000만원, 500만원씩 나눠서 차명으로 계좌를 만들어 본인과 가족 이름으로 세탁해 007가방 2개(1개에 500만원씩)에 나눠 박 전 장관에게 갖다 준적도 있다”고 세탁 과정을 설명했다.


15년 선후배와 친구에서 적으로

또한 “그 자금 중 일부를 가지고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해 자금을 증식시킬 것을 박 전 장관이 지시해 주식에 일부 투자했으나 주식시장이 폭락해 손해를 보자 이에 대한 질책을 받은 적도 있다”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토동에 소재한 부동산 한 채를 매입했다고 보고하자 박 전 장관이 밤늦게 현장을 방문해 그 주택이 맘에 들지 않으니 처분하라고 해 손해를 보고 처분한 사실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씨는 “70억대 규모의 자금 세탁과 관리를 진행해오던 중 그 액수가 점점 불어나자 박 전 장관은 본인과 가족계좌로 자금을 관리하기에는 자금 액수가 너무 많으니 본인의 믿을만한 친구에게 부탁해 그의 친인척 명의로 자금 세탁 후 분산해 차명계좌를 개설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지시를 받은 김씨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몇 명에게 찾아가 협조를 구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수차례 청탁 끝에 김씨의 중학교 동창인 김모씨(법무사)에게 자금의 상당부분을 관리시켰다. 이 후 박 전 장관으로부터 박은 자금 전부를 서울시 은행, 증권사 등에서 현금으로 세탁해 본인의 친인척 명의의 차명 예금과 친구인 김모씨의 친인척 명의의 차명예금으로 세탁 완료했다. 박 전 장관이 모든 통장과 인감을 돌려달라고 김씨에게 요구해 모든 것을 돌려주었다. 이 후 1992년 말 정권이 바뀌게 되자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 김 대통령이 1차로 박 전 장관을 제거할 계획이며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자금을 추적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박 전 장관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박 전 장관은 김씨에게 그 동안 처리한 자금이 문제가 되니 일단 해외로 도피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 이에 김씨는 1993년 2월 해외로 출국한다.

같은 해 3월 박 전 장관은 정덕진이 연루된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됐고, 김씨는 미국서 도피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시간이 경과해 박 전 장관이 김씨에게 친구 김모씨에게 맡긴 돈까지 모두 회수 할 것을 지시해 중국에 도피중인 친구 김모씨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김모씨는 “이미 다 써버리고 없다”고 했다. 이에 김씨가 “왜 허락도 없이 그 돈을 썼느냐”고 추궁을 하자 김모씨는 “어차피 불법자금이니 내가 좀 쓴다고 문제가 되냐”고 오히려 따졌다는 것이다.


박철언 긴급 기자회견 내막

김씨는 “비자금 관리인은 최소 10여명, 가·차명계좌는 100여개에 이른다”면서 “무용과 K교수, 전직 H은행지점장 서모씨 등 소송 당사자 외에 법무사 김모씨, 박 전 장관의 비서 출신 강모씨와 이모씨, 미술거래상 장모(여)씨, 가수 출신 연예인 장모(여)씨 등이 수억에서 수 십 억 원씩 차명계좌를 운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차명계좌를 모두 합치면 총 자금 규모는 2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며 “박 전 장관이 계속 부인한다면 통장과 수표사본, 도장, 괴자금 인출날짜, 전달한 날짜 등이 적힌 메모 등을 검찰과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김씨에게 횡령 당한 돈 등 모든 자금은 선친의 뜻에 따라 현역에서 물러나면 복지통일재단을 만들려고 유산과 친·인척 자금을 모은 돈, 협찬자들이 대가 없이 내놓은 돈을 합친 것”이라며 비자금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박 전 장관은 또 “수표를 추적하면 다 나오는데 본인은 김영삼 정권서도 대기업 관련 자금은 나오지 않았다”고 투명한 돈이었음을 주장했다.

박 전 장관은 이어 “차명계좌는 60개에 불과하며 은행 통장은 한국복지통일연구소에서 갖고 있었다. 자금 관리인이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모두 정기예금이나 신탁 이율을 높은 것으로 바꾸는 심부름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김씨는 통장 분실사고를 낸 사람으로 외국으로 도피했다가 공소시효가 지나니 돌아와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철언은 누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6공의 황태자인 박철언은 1942년 8월 5일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로 활동했다. 전 대통령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의 고종사촌 동생이기도 한 그는 신군부의 등장 이후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법사위원으로 제5공화국 헌법의 기초작업에 참여했다. 그 후 대통령 비서관, 안기부장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면서 비밀리에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제13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전국구)이 되고 ‘6공의 황태자’로 불리면서 정무 제1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서슬퍼런 권력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5, 6공 시절 실세 중 실세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에는 슬롯머신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재기, DJP공동정권의 주역으로 권력 중심부에 복귀했다.

그러나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권세는 십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은 그를 피해가지 못했다.


#‘179억 여교수 송사’뒷담화

‘찰떡 애정’박철언↔여교수 등 돌린 진짜 이유는?

박 전 장관은 자신과 친인척 등의 돈 170여억원을 횡령했다며 서울 H대 무용과 여교수 K씨(47)를 고소했다. 박 전 장관의 처남 현모씨는 지난해 4월 “K교수가 내 돈 16억원을 횡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현씨는 소장에서 “K교수가 매형인 박 전 장관으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해 오던 170여억원을 횡령했으며 이 중 16억원은 내 돈”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박 전 장관도 K교수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이후 박 전 장관과 부인 현경자 전 의원, 박 전 장관의 어머니를 포함한 친척 등 모두 8명이 K교수와 모 은행 여직원, 박 전 장관의 고교 동창 서모씨 등 6명을 다섯 차례에 걸쳐 고소했다.

박 전 장관은 문제의 자금을 처남 현씨→고교 동창 서모씨→여교수 K씨 순서로 맡겼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고소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1998년 여름 B교수의 소개로 H대 무용과 조교수이던 K씨를 만났으며, 나중에 통장 관리를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의 측근이던 김모씨는 “이들은 마포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서 사실혼 관계를 맺고 179억 비자금관리를 시켰으며 이 사실은 박 전 장관의 부인 현경자씨도 알고 있다”며 “K교수는 이 돈으로 B교수 등 교수들에게 빌려주고 소위 돈놀이를 했으나 이자관계로 B교수와 틀어진 후 돈놀이를 접고 비자금의 대부분을 그의 언니와 형부 C씨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김모씨는 또 “박 전 장관과 K교수가 결별한 직접 원인은 박철언의 엽색행각 때문”이라며 “K교수가 소개한 제자인 비서들을 농락하다 들켜 K교수가 분개하자 박 전 장관은 오히려 ‘너에게 위자료 줬지 않느냐’며 능청을 부리다 결국 K교수가 변호사를 통해 사전 법률 대응논리를 치밀하게 짠 후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장관이 K교수에게 맡긴 통장은 50개가량으로 실명이 아닌 통장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 측은 “K씨가 이 통장들을 위조해 현금을 빼냈고 은행 관계자도 가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본지는 반론을 듣기 위해 K교수 측 오해균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지만 직원과의 통화해서 “기자들과의 전화는 원치 않는다”는 답변만 들어야했다. 박 전 장관의 처남 현모씨와 K교수와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접촉이 이뤄지지 않았다.

분당 경찰서 관계자는 “고소인과 피고소인 조사를 끝내고 계좌 추적을 하고 있다”며 “조만간 고소인과 피고소인 간의 대질신문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확한 고소 내용은 고소인 측의 요구에 따라 공개할 수 없으며 문제의 비자금은 우리 조사대상이 아니고 검찰에서 조사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전 장관은 “87년 설립한 국방정책연구소를 한국복지통일연구소로 바꿨고, 이걸 재단으로 설립하기 위해 관리해 오던 기금을 횡령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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