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와중에서 시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그런 운명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장애인 인권 운동을 펼치며 마침내 한나라당 비례 대표 국회의원이 된 정화원 의원. 정화원 의원은 1948년 경북 상주 출생이다. 한국 전쟁 때 피난 트럭을 타고 가다가 북한군의 폭격 파편을 맞고 시력에 이상이 생겼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반 학교를 다니다가 결국 적응하기가 힘들어 15살부터 맹아 학교를 다녔고, 19살부터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그 때의 심정에 대해 정 의원은 “어렴풋이 보이다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어릴 때 읽은 헬렌 켈러 생각을 떠올렸고, 그 때부터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맹아학교에서 배운 침술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다 87년에 전국 최초로 ‘부산장애인총연합회’를 만들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전국 각지에 장애인 연합이 생겼고, 결국 97년도에 ‘한국장애인총연합회’가 탄생했다.

또한 90년에는 전국 최초로 ‘장애인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지금은 장애인 출자액이 무려 300억원에 이르렀다. 어려운 결심 끝에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동기와 원칙에 대해 정 의원은 “지금까지는 장애인 복지가 그저 정부나 사회의 동정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데, 장애인 운동을 해 보니 그래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정치 세력화를 이루어 ‘장애인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반드시 장애인 단체를 만들어 ‘협상’을 통해 당연한 권리를 획득해야 할 것이고, 셋째, 이 모든 과정을 비장애인에게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국회에 진입해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다. 역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장향숙 당선자와는 부산에서 같이 운동하던 막역한 사이로서 “당파를 초월해 ‘동지적 관점’에서 장애인 인권과 복지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떠돌고 있는 부산의 재산에 대해 그는 “말도 안된다. 부산에는 전혀 없고, 양산에 안마시술소가 하나 있다. 시의원하면서 세를 주고, 그 돈으로 살았다”고 해명한다.

비장애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로 그는 ‘장애인에 대한 세가지 불이익’을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제도적 법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3가지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법적 제도적 불이익은 많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물리적 불이익’이다. 도대체 아직도 거리 곳곳에 육교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또한 거리나 건물 곳곳에 턱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건 지금 당장이라도 장애인을 ‘배려’ 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무섭고 뿌리깊은 불이익이 있다. 바로 우리 정부나 사회, 일반 시민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장애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나 편견’이다. 장애인에게 무슨 능력이 있고, 또 장애인에게 무슨 일을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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