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들이 느끼는 감원공포가 외환위기 때 못지않습니다. 그야말로 젖은 낙엽처럼 엎드려있는 신세지요.” (4대그룹 상무급 인사)

재계에 인사 칼바람이 불고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재계는 벌써부터 ‘초상집’ 분위기다. 분위기로 봐선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임원들이 잘려 나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특히 △올해 실적이 안 좋은 기업 △기획 재무 홍보 등 지원부서 △외부에서 영입된 계약직 임원일수록 체감 공포가 더 크다. 유동성 부족에 직면한 기업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경기 침체로 이어지면서 대기업들까지 임원 감축, 명예퇴직 유도, 신규 채용 동결 등의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기업계와 금융계에선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또다시 대량 감원의 폭풍이 덮쳐올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뒤숭숭하다.

모든 계열사를 매각 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는 C&그룹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C&그룹 관계자는 “임원들이 인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며 “조직 통폐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임원들 거취도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귀띔했다.


삼성…CEO와 임원 인사 방향 아직 미정

그렇다고 4대그룹이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이건희 전 회장 퇴진 이후 첫 계열사 인사를 앞둔 삼성그룹은 인사에 대해 함구하는 분위기지만 중폭 이상의 세대교체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측 고위관계자는 “최고경영자(CEO) 인사 폭과 조직개편 방안이 결정된 뒤 임원급 인원 조정도 뒤따라 이뤄질 것”이라며 “아직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그룹 안팎에서는 계열사별로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는 것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로 국내외 경기가 나빠진 상황이라 승진 폭은 크되 경질 인원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적이 부진한 몇몇 계열사 사장의 ‘인책론’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삼성 임원은 “계열사별로 승진을 최소화하고 퇴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임원 수를 줄이는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5월 임원 223명을 승진시켰던 삼성그룹이 연말 또는 연초 인사에서 이보다 적은 수를 승진시키되 경질 인원은 늘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한편 삼성그룹은 12월 중순으로 예정된 이 전 회장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판결 뒤인 연말이나 내년 초께 정기인사가 단행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인사이동 최소화 전망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최근 부회장급 인사를 통해 다른 그룹들보다 빨리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최근 부회장급을 중심으로 한 큰 그림의 인사는 실시됐고 다른 기업에 비해 실적도 나쁘지 않아 대폭적인 임원 감원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 임원은 총 200여 명이며 지난해 말 인사에서는 35명이, 지난해 2월 정기인사 때는 41명이 신규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ㆍ기아차가 내년 경기악화를 대비해 연말 인사에서 판매ㆍ마케팅 쪽을 강화하는 대신 다른 부문에 대한 조직 통폐합과 함께 감원을 실시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LG, 12월 중순 CEO인사 전망

LG그룹은 12월 중순을 전후로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승진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올해 주요 계열사가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감원 염려는 적은 편이다.

또 주요 계열사 CEO들이 바뀐 지 2년 안팎이어서 CEO급 인사 요인도 크지 않다. 그러나 LG전자 등이 예상 밖에 큰 폭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안심하긴 이른 상황이다.

이와 관련 그룹 관계자는 “3분기까지 성적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4분기 성적도 봐야 하고 또 내년 상반기까지 상황도 안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긴축경영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면서 “승진 인원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SK, 임원 승진 수요 작을 것으로 전망

SK그룹은 12월 중순에서 1월 초 사이에 임원인사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임원인사 폭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 지주회사인 ㈜SK의 박영호 사장, SK에너지의 신헌철 부회장, SK텔레콤의 김신배 사장 등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의 임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작년 말 SK에너지, SK텔레콤 등에서 도입한 사내독립회사(CIC)제도를 얼마나 확대하느냐에 따라 임원 인사폭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SK에너지는 지난해 4개의 CIC를 두면서 1명이던 사장이 4명으로 늘어났고 임원 수가 증가했다.


내년 경영위기 대비한 인사

금강산관광 중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은 올 연말 임원 인사폭이 최소한에 그칠 전망이다. 이는 올 들어 1월에 현대상선과 4월에 현대증권, 8월에 현대아산 사장이 각각 바뀌어 경영진 인사요인이 크게 줄어든 데다 대북사업여건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올해 주요 계열사 경영진이 바뀌면서 경영진 인사는 끝난 셈”이라면서 “연말에 임원 인사가 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에다가 요즘 회사 상황을 감안하면 대규모 승진 인사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도 최근 갑작스러운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정준양 사장(생산기술부문장)이 지난 18일 돌연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포스코는 이구택 회장, 윤석만 사장, 정준양 사장이라는 3인 대표이사 체제에서 이구택 회장과 윤석만 사장 2인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게 됐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소폭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내년도 경제 전망이 밝지 않을 것으로 보고 경험이 많은 현재 경영진을 대부분 신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환율과 고유가의 여파로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한 대한항공은 경영진의 물갈이 여부가 관심사다.

아시아나 항공 강주안 사장 교체에 이어 2004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종희 사장이 교체될 경우 항공산업의 양대 축이 동시에 바뀌는 유례없는 인사가 될 전망이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차명계좌 관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어 12월 정례 임원인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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