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결단력으로 위기에 대처하라”

국내 경기악화를 맞아 ‘장기 불황’에 대한 공포가 재계에 감돌고 있다. 세계 경기악화가 가시화되며 쉽게 불황이 해소되지 않으리란 우려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긴축경영에 들어가며 이같은 위기감은 보다 확산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일부 발 빠른 기업 사이에서는 일본의 ‘10년 장기 불황’ 극복사례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이겨낸 사례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분명 일본의 불황속에 무너진 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황 속에서도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난 사례도 적지않다. 10년 장기 불황을 극복한 일본기업의 특별한 경영비법을 짚어봤다.

최근 재계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주목받고 있다. 장기 불황을 겪고도 살아남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특히 국내 경기악화가 자칫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사면서 이같은 관심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과연 10년 불황을 이겨낸 일본 유수의 기업들은 어떤 경쟁력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기업 위기극복 어떻게?

일본 기업의 위기 극복 사례는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아사히맥주는 발상전환을 통해 급격히 성장한 경우다. 아사히맥주의 전신인 대일본맥주는 기린맥주와 더불어 일본 최대의 맥주 회사였다. 하지만 미 군정은 1949년 대일본맥주를 아사히맥주와 삿포로 맥주로 분리시켰다. 아사히맥주가 위기에 빠진 것도 이때부터다. 기린맥주가 음식점과 가정을 대상으로 판매활동을 전개해 시장점율 61.4%를 차지하면서 승승장구 한 것에 비해 아사히맥주의 점유율은 10%이하로 전락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역발상 전략’이다. 하구치 히로히타 사장은 당시 원칙을 뒤엎고 “전례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가 아닌 “전례가 없으니 하겠다”라는 전향적 전략을 내세웠다. 타 맥주와 차별화된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최고급 원료를 해외에서 비싸게 구입해 비싼 맥주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때 나온 ‘슈퍼드라이’와 ‘고쿠기래 맥주’가 히트를 쳤다. 경영위기도 극복했음은 두말할 것 없다. 아하시맥주의 시장 점유율은 1985년 9.6%에서 1995년 30.4%로 크게 증가했다. ‘역발상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두번째로는 사업 다각화로 성공한 경우가 꼽힌다. 캐논 창업자인 미타라이는 쓰러져가는 소규모 렌즈 공장을 사들여 카메라 생산을 시작했다. 자본금 300만엔의 조그만 동네 공장으로 출발한 것이다. 당시 카메라 시장은 독일의 라이카와콘탁스, 일본의 니콘 등이 장악하고 있었다. 신규 업체는 발 내딛을 틈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캐논은 사무 자동화 진전에 따른 사무용 제품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1964년 전자탁상계산기, 1966년 복사기 사업에 신규로 참여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컴퓨터 주변 기기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매출의 50%를 여기에서 올렸다. 1990년대 중반에는 반도체 제조 장치 사업까지도 참여했다.

이런 사업 다각화의 성공으로 매출과 순이익이 급증했다. 과거 강력한 경쟁자였던 니콘의 매출액은 캐논의 1/8에도 못 미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경쟁조차 힘들던 상황에서 사업 다각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 오늘날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1, 2위를 다투게 된 셈이다.

세번째 야마토운수는 신규사업 진출로 위기를 돌파한 사례다. 1920년 창업한 야마토운수는 창업 후 활어를 수송하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일본 최대 백화점인 미쓰코시백화점의 상품 운송을 맡으면서 사세를 급격히 키웠다. 특히 전국에 산재해있는 마쓰시다전기의 가전제품 운송까지 맡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야마토운수는 일본의 고도성장기(1960~1975년) 새로운 물결에 늑장 대처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물량이 크게 늘어났던 장거리 화물의 대량 운송 부문에서 일본통운과 세이노운수 등, 트럭 강자들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졌다고 자부한 백화점 상품 운송이나 소형 화물 분야에서도 신흥 업체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대 오일쇼크를 맞이하면서 회사는 위기로 치닫았다. 그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택배’다. “한 치의 실수 없이 고객과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배달한다”는 시스템을 홍보하면서 야마토운수는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반 세기 이상 거래해왔던 대고객 미쓰코시백화점과의 거래도 완전히 중단했다. 택배사업에만 집중해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10년 불황 극복과제

분명 한국이 일본보다 나은 점도 있다. 점진적으로 느린 개혁을 해왔던 일본과 달리 우리는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구조개혁을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본 경제위기 원인들은 우리가 고스란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부동산 거품과 위기의식의 결여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분위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제 위기 원인이 우리 기업이 고스란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은 일본보다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탓에 장기 불황을 이겨내기엔 체력이 부족하다”면서 “기업의 빠른 결단력으로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했다. 부실처리를 비롯해 잠재부실을 정리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향후 다가올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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