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家 정리 위해 투입…과연 잘하고 있나

‘한국판 엔론’의 주인공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의 복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지난해 12월 컴백한 손 명예회장의 역할론이 불거진 탓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SK그룹 내 최태원 SK 회장과 최신원 SKC 회장 사이 재산분할을 두고 중재하기 위해 복귀했다는 뒷말이 나돌고 있다. SK그룹의 재산분할 과정을 되짚어본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의 역할을 둘러싸고 재계 일각의 구설수에 올랐다. 분식회계로 기업을 위기로 몰았던 전 경영인이 명예회장으로 복귀하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추측이 나온 탓이다. 손 명예회장이 SK그룹에 복귀한 것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 후 약 5년만이다.


손길승 복귀한 진짜 이유

재계의 시선은 손 명예회장의 역할에 맞춰져 있다. 굳이 5년만에 다시 SK텔레콤으로 복귀한 이유에 궁금증이 증폭되는 것. 재계 일각에서는 최신원 SKC 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의 분가에 대한 조정 역할을 맡은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사실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들인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분가설은 오래전부터 나돌았다. 실제 최신원 회장이 언론을 통해 분가를 언급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분가는 쉽게 풀리지 않는 모양새다. 최태원 회장의 SK㈜가 SKC 지분 42.50%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반면 최신원 회장의 SKC 지분율은 3.11%에 불과하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선 최태원 회장과 최신원 회장의 갈등설도 흘러나오는 상황. 손 명예회장의 복귀 배경에는 이들의 다급함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사실 손 명예회장이 SK그룹에 복귀하리라는 소문은 지난 8월 특별사면을 받은 이후 꾸준히 불거져왔다. 특별사면 이후 재벌 총수들의 경영복귀가 은근 슬쩍 일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던 탓이다. SK그룹 측은 그동안 이 같은 소문을 부정해왔지만 결국 지난해 12월 8일 손 명예회장의 복귀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SK텔레콤 측은 “경영자로서 그룹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높이 사 명예회복 차원에서 추진된 사안”이라며 “손 전 회장은 경영 자문이나 고문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SK그룹에서 손 명예회장의 입지는 견고하다. 손 명예회장은 입사 13년만인 1978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20년 간 그룹 기획실장만 맡아온 인물이다. 고 최종현 회장이 늘 옆에 두었던 최측근이었던 셈이다. 그는 1998년 최종현 명예회장이 타계하자 당시 38세이던 최태원 회장을 보좌할 역할을 맡았다.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물러날 때까지 약 6년 간 최태원 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끈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실제 SK그룹과 손 명예회장의 관계는 그가 SK그룹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된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 예우라는 이름으로 일정 수준의 지원이 이뤄졌고, 심지어 워커힐에 손 명예회장의 집무실을 얻어 준 것도 바로 SK그룹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경영 복귀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것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명예회장이 최신원 회장과 최태원 회장 사이 중재를 맡기에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초유 ‘분식회계의 추억’

하지만 여기에 대한 재계 일각의 눈초리는 썩 곱지 않다. 문제가 됐던 경영인을 복귀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분명 2003년까지만 해도 손 명예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기업의 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 평가는 오래가지 못했다. 손 명예회장은 2003년 이후 부패한 경영자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SK글로벌 사태는 2003년 3월 SK그룹 내부에서 터진 분식회계 사건이다. SK그룹은 물론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국가 신인도까지 흔들리는 사상 초유의 악재가 됐다. 특히 사태가 터진 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금융시장이었다. SK텔레콤, (주)SK 등 SK그룹주와 SK글로벌에 돈을 빌려준 하나, 우리, 조흥은행, 신한지주 등 은행주가 폭락하면서 종합주가지수가 한때 530선 밑으로 주저앉았다.

SK계열사들이 발행한 1조78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중 MMF(머니마켓펀드)에 편입된 물량에 대한 환매사태가 이어지면서 자금시장 마저 꽁꽁 얼려버렸다. 채권시장도 SK글로벌 분식회계 발생직후 5년만기 국고채가 연 5%대로 올라섰고, 서울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는 한때 1238.20원까지 폭등하는 등 금융시장 전체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외국 언론들은 SK글로벌 사태를 ‘한국의 엔론’과 ‘한국의 월드콤’으로 비유하면서 “한국경제가 중대한 신용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해 국내 기업의 신용도 하락까지 부추겼다.

검찰에 따르면 SK글로벌은 회계 분식을 통해 총 1조5587억원의 이익을 부풀렸다. 이익잉여금 1조5587억원을 과대계상하고 손익계산서상 당기순손실 1226억원을 과소계상했다.

이로 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 명예회장 등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그뿐 아니라 SK글로벌은 유동성위기에 몰려 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가고, 최 회장의 주식 전부가 채권단에 담보로 잡히는 등 그룹자체가 흔들리는 타격을 입었다.

SK그룹의 시련은 재계의 시련으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위원회가 같은 해 8월말 SK글로벌 분식회계에 연루된 SK해운에 대해서도 분식회계를 한 혐의를 포착, 해운의 대표이사였던 손 명예회장을 검찰 고발하면서 비자금문제가 새롭게 수면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자금수사 과정에서 100억원의 ‘검은 돈’이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흘러 들어간 것이 드러나면서 정·재계를 발칵 뒤흔들었다.


사고친 경영인 복귀 논란

결국 시간이 약인 것일까. 주주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주고, 또 국가적 위기를 초래했던 손 명예회장은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패 경영자’로 실형을 받았던 인물을 영입하는 것이 과연 기업 투명성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은 앞으로도 손 명예회장을 따라다닐 전망이다.

손 명예회장의 복귀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명예는 명예회장에 추대된다고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 회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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