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 용대선 사업은 ‘해운위기 주범’ 비난


농협중앙회의 자회사 농협물류가 무허가로 용대선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다. 용대선이란 해상화물 운송을 위해 선박 등을 임대하는 것. 하지만 농협물류는 보유선박이 없는 탓에 선박임대업을 할 수 없다.

용대선 계약 자격이 없는 농협물류가 고스란히 배를 빌려다 다시 빌려주는 ‘다단계 용대선’ 계약을 해왔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무자격 업체의 무분별한 용대선 계약이 해운업계 부실로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물류가 무면허로 용대선 사업에 뛰어든 것이 뒤늦게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다. 배한 척 없는 농협물류가 선박임대사업을 벌였던 것이다.

농협물류의 무자격이 드러난 것은 중견 해운업체 삼선로직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삼선로직스는 해운업계 7위 기업으로 지난 2006년부터 3년째 흑자를 냈던 튼실한 기업이다. 삼선로직스가 흑자도산에 몰린 이유는 바로 용대선 계약 때문이다. 삼선로직스가 보유한 선박은 8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용선을 통해 운용하는 선박이 약 80대에 달하면서 부실이 생겨난 셈이다. 삼선로직스는 싱가포르 법인 등으로부터 용선 대금을 받지 못하자 지난 3월 6일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정부 감시 소홀한 틈 타

농협물류가 주목받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삼선로직스가 용대선 대금을 받지 못한 곳은 싱가포르 업체를 제외하고도 국내 업체가 껴있었는데, 이중 농협물류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농협물류는 선박대여업체가 아니다. 용대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해상화물운송사업자나 해상여객운송사업자 혹은 선박대여사업자 신고를 해야 하는데 농협물류는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농협물류는 현재 해운중개업, 해운대리점업으로만 등록 돼 있는 상황이다.

해당 사업자 등록을 위해서는 최소 총톤수 100톤 이상의 선박을 1척 이상 보유해야한다. 결국 농협물류는 한척의 선박도 보유하지 않고 용선을 한 뒤, 수수료를 붙여 다시 빌려주며 수익을 올렸던 셈이다. 이에 농협물류 측 관계자는 “용대선 업무를 하기 위해 관련 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2004년 7월 설립된 농협물류는 같은해 9월 해상화물운송 중개업을, 12월에 해상화물운송 대리점업 자격을 취득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 사업을 진행해왔으면서도 해운법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정부당국의 감독이 허술한 틈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국내 용선 계약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그 파악이 쉽지 않은 점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업체들의 계약 내용을 알지 못해 무등록 용선 업체에 대해서 파악하기 쉽지 않다”면서 “현재까지 적발된 사례가 전무해 처분이 정해진 것도 없다”고 밝혔다. 결국 농협물류 입장에서는 무등록 사업이라 해도 리스크가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반면 농협물류는 해운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용대선사업에 뛰어들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국내 해운업계는 선주로부터 용선한 선박을 다시 재용선하는 형태로 거미줄 같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다. 선박 한 척의 용선이 최소 5개 이상의 업체를 거치며 채무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종 수수료가 붙어 최초 용선료가 1일 기준 1만달러라면 최종적으로는 수십만달러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한다.

상황이 이쯤 되자 ‘누워서 떡 먹는’ 사업에 신생 선사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2004년 73개사였던 국내 해운선사는 불과 4년 뒤인 지난해 말 177개로 배이상 늘었다. 특히 정부 당국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탄 무등록 선박대여업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무분별한 재용선이 해운업계 부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용선주 하나가 부도내게 된다면 용선자금을 받지 못하는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날 수 있다”면서 “특히 무등록 업체들이 활개를 치면서 해운업계 용선 관행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작년말 업계 순위 17위의 파크로드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데 이어, 지난달 초엔 업계 7위인 삼선로직스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등록 업체 첫 사례

결국 농협물류의 무허가 해운사업 논란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농협물류 측은 용선 관련 업무를 일체 중단한 상황이다. 농협물류 관계자는 “선박을 구입해 선박대리점업 등록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의 농협물류의 처분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무허가 용선에 대한 처분이 없었던 만큼 농협물류가 재제를 받는다면 이는 해운법 상 무면허 해운영업에 대한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전체적 용선문제를 파악하는 중”이라며 “시장 조사를 통해 농협물류를 비롯한 무등록 용선업체에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분별한 용대선이 해운 연쇄도산 불렀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국제무역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해운업계가 붕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위기는 철광석과 유연탄 등 건화물을 나르는 벌크선에서 시작됐다. 넘쳐나던 물동량으로 하루 10만달러를 주고도 구하기 힘들었던 벌크선 용선료가 작년 말부터 1000달러대로 폭락한 것이다.

용대선계약은 담보나 보증금 없이 철저하게 신용 계약으로 이뤄진다. 해외선사가 배를 빌려 줄 때 빌려 가는 측의 신용도를 보기 때문에 메이저 선사가 아니고선 외국에서 배를 장기 임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국내 메이저 선사가 해외에서 배를 빌려 오면 이를 국내 중소형 선사에 빌려 주고, 국내 중소형 선사들은 이를 다시 빌려 주는 구조다.

모 해운사 관계자는 “계약이 넘어갈수록 보통 1년씩 기간이 짧아져서 다른 업체로 다시 빌려 줄 때마다 15%씩 용선료가 불어 난다”고 밝혔다. 결국 용선이 한단계씩 내려갈수록 막대한 차익과 비싸진 용선료를 남기는 셈이다.

문제는 계약을 맺은 중소형 선사가 이를 다시 다른 선사에 빌려 주면서 결국 1척의 배에 재용선이 5~7단계를 거친다는 점이다. 재용선 단계가 높아질수록 위험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처럼 해운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먹이사슬의 하단부에 위치한 소형 선사가 부도를 내게 된다면 결국 그 여파가 메이저 선사까지 미치게 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내달 재용선 관행을 규제하는 내용의 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실제 시행에 들어갈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재용선 관행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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