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나가는 은행권 -수익 급감 속 스톡옵션 논란


시중 은행들이 임원들에게 막대한 스톡옵션을 부여했다가 입방아에 올랐다. 국제 금융위기에 정부 당국의 지급보증 지원을 받는 대가로 스톡옵션을 반납한지 네 달만에 태도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권 임원들은 스톡옵션을 반납하면서 자구책 마련을 다짐했지만 최근 부여된 스톡옵션은 당시에 스톡옵션 비해 3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불경기로 인한 부실채권 급증이 재계 우려로 떠오르는 와중에도 은행들이 코앞 돈잔치에 혈안 됐다는 지적이다.

일부 은행들이 은근슬쩍 배 불리기에 나섰다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최근 주총에서 은행권이 잇따라 스톡옵션 등을 배정하면서 임원들 잇속 챙기기에 나선 탓이다. 이들은 지난해 스톡옵션을 반납한 바 있다. 정부가 지급보증으로 수백억달러의 외화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스톡옵션 반납 등의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말 은행 임원들이 반납한 스톡옵션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올해 들어 주가가 폭락한 탓에 스톡옵션 행사가격이 시가보다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예전 스톡옵션을 행사할 경우 오히려 손해 보게 된다. 하지만 최근 부여된 스톡옵션은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주어진 만큼 적잖은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 쓸모없는 스톡옵션에서 막대한 차익을 볼 수 있는 스톡옵션으로 갈아 탄 셈이다.


은행들 돈잔치 자격있나

은행권에서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신한은행이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3월 17일 스톡옵션 지급을 결의했다. 스톡옵션은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등 경영진 107명에게 총 61만주가 부여됐다. 또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스톡옵션 제공을 공개적으로 폐지해놓고 슬그머니 연봉을 인상한 것도 드러났다.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 1인당 지급액 1억300만원은 KB금융지주 사외이사의 5배가 넘고, 우리금융지주의 2배가 넘는다.

또, 외환은행도 지난 3월 12일 이사회를 갖고 서충식 부행장 등 14명에게 총 49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하기로 했다. 심지어 주주총회에서 등기임원인 래리 클레인 행장 내정자에게 향후 3년치 스톡옵션 90만주, 장명기 수석부행장에게 1년치 8만5000주를 부여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KB금융지주는 회사가 시장에서 자사주식을 사들여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스톡그랜트(성과연동주식)를 지급하기로 했다. 수혜대상은 황영기 회장, 김중회 사장, 강정원 국민은행장에게 25만주 한도로 부여하고 이사의 보수한도를 2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늘릴 계획을 세워 놓았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은행권들이 거액의 스톡옵션을 남발하자 세간의 눈초리가 고을리가 없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신한금융과 KB금융은 스톡옵션을 반납했지만 이 역시 궁여지책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여론이 허락했다면 고스란히 스톡옵션 잔치를 벌이려 했다는 속내가 고스란히 내비치는 까닭이다.

과연 은행은 돈잔치를 벌일 만큼 경영을 잘했던 것일까. 시중은행의 지난 연말 기준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우리은행 11.7%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은행이 모두 13%를 넘겨 금융감독원이 권고한 12%를 넘겼다. 문제는 은행들이 돈잔치를 벌일 만큼 안정권에 들긴커녕 이 BIS 비율이 언제까지 유지될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BIS 비율의 분모가 되는 부실자산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데 비해 자본확충은 은행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 대출자산 838조원 가운데 5% 수준인 42조원가량이 부실 처리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당장 건설, 조선사 1차 구조조정에 따른 추가 대손충당금 규모가 2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까지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은행 건전성 관리 실태는 곧바로 실적에 반영됐다. 지난해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조5108억원으로 전년보다 45.5% 감소했다. 신한은행 순이익은 1조446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9.5% 줄었고, 외환은행의 당기순이익도 전년 대비 16.6% 줄어든 8013억원을 기록했다.


정부 믿고 막나가나

이미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피치는 지난 3월 12일 국내 은행들의 신용도가 위험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단순자기자본비율(TCE)이 지난해 6월 말 6.4%에서 내년 말엔 4%까지 하락하게 될 전망이다.

정작 은행들은 부정적 시장전망 속에서도 임원들 돈잔치에 혈안이 됐던 셈이다. 심지어 올해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기로 결의한 상황인 탓에 ‘임원들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은행이 위험해지면 정부의 자금이 투입돼 정상화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외환위기 이후 168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은 은행의 경영진이 높은 성과보수를 챙기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들은 나름 할 말이 있다는 투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사실 스톡옵션은 돈 잔치가 아니라 경영 성과에 대해 주어지는 당연한 보상인 셈”이라며 “충분한 보상이 없다면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과연 이 말이 세간에 얼마나 받아드려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부 은행들이 스톡옵션 계획을 취소하거나 자진 반납 받으면서 여론을 달래고 있지만 비난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그동안 스톡옵션 짭짤했는데…”

은행권의 스톡옵션 논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잊을만하면 종종 거론되면서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역대 은행권 임원들이 스톡옵션을 통해 거둬들인 수익을 보면 은행들이 스톡옵션을 강행하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2002~2004년 받은 스톡옵션 10만여주를 2007년에 행사, 약 20억8000만원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2002년 부여받은 7만5000주의 스톡옵션을 지난해 행사, 15억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챙겼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2003년 국민은행의 영업실적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해 1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긴 바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