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자꾸 해외로…멈춰가는 산업 엔진

고형권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물가관계차관회의 및 제10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형권 기획재정부 차관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물가관계차관회의 및 제10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김은경 기자] 제조업 생산 능력 대비 생산실적을 뜻하는 제조업 가동률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산업 경쟁력 약화에 투자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조선업, 자동차 등 전통적인 주력산업이 부진한 데다 경기 둔화 우려로 기업들이 설비 등 신규 투자를 망설이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정부 경제 정책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인 혁신성장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 투자가 부진해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며, 정부의 규제 완화와 노동정책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업·자동차 등 전통적 주력산업 부진
경기 둔화 우려로 기업 신규 투자 멈춰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한다. 제조업 부진은 곧 한국경제의 위기로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8%로 같은 기간 기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66.8%) 이후 가장 낮다.

같은 기간 제조업 가동률지수는 1998년 바닥(89.7)을 치고 이듬해 100.8로 반등한 뒤 금융위기 때(2009년)를 제외하면 2015년까지 매년 100을 웃돌았다. 이후 조선업 등 주요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2016년 100 밑으로 떨어진 뒤 지금까지 상승 반전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 외환위기 이후 최저

제조업 가동률은 생산능력 대비 생산량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가동률 하락세가 이어지는 원인은 주력산업 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가동률은 조선업이 포함된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과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 등에서 주로 저조하다. 특히 해당 분야는 최근 구조조정으로 생산능력이 줄었음에도 생산이 미진해 가동률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생산능력 부진은 최근 설비투자 침체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설비투자는 6개월 연속 전월 대비 하락세였다가 지난 9월 가까스로 반등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20% 가까이 위축된 모습이다. 투자 부진으로 생산도 탄력을 받지 못하면서 가동률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인 ‘J노믹스’의 틀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투자와 생산능력이 감소하고 있는데 공장 가동률마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제조업 동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늘리는 대신 국내투자를 줄이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일 발표한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올 8월 설비투자는 전달에 비해 1.4% 감소했다. 3월 7.6% 감소한 이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9월~1998년 6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한 이후 약 20년 만의 최장기간이다.

수출입은행과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3일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 직접투자액은 총 74억 달러로 1980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많았다. 이전까지 제조업체의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해외투자액은 2013년 47억 달러였다. 법인세 인상, 인건비 상승, 노동시장의 경직성, 각종 규제 등에 따른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가 국내 제조업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을 중심으로 강화되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도 국내 제조업이 해외로 나가는 요인으로 꼽힌다. 

제조업에 금융·서비스업 등 다른 업종까지 더한 전체 해외투자액은 올 상반기 기준 227억 달러였다.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한 금액(외국인 직접투자)은 101억9000만 달러였다. 125억 달러 이상이 순유출된 셈이다.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액은 지난해 상반기에도 237억 달러였는데 2년 연속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해외투자 늘고 국내투자 줄어

미국이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것도 국내 기업이 해외투자를 늘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가전 공장을 세운 게 대표적이다. 삼성은 지난 1월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장에서 세탁기 생산을 시작했고 2030년까지 3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확장할 예정이다. 정규직 인력도 650명에서 1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LG도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으며 올해 안에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가 해외로 떠난 기업을 되돌아오게 하겠다며 5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유턴기업법(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법)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KOTRA가 김규환 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2월 발효된 유턴기업법에 따라 지난달까지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총 50개였다. 이 중 실제로 국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28곳에 불과했다.

유턴기업으로 선정된 곳도 해마다 줄고 있다. 2014년 22개였던 유턴기업 수는 지난해 4개, 올해 8개에 그쳤다. 정부가 유턴기업에 지원한 금액은 총 271억8800만 원이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사가 안 되는 데 기업이 공장 가동을 안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제조업 가동률이 떨어지는 것은 국내소비가 격감하고 내수 경기가 안 좋다는 의미다. 수출 경기가 좋다고 하는데 반도체를 제외하면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최저임금의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져버리니, 공장을 적게 돌리고 인건비도 적게 투입하는 것이다. 근로 시간도 줄이다 보니 당연히 가동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해외에 나가면 우선 인건비가 낮아진다. 지연스레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규제가 너무 많다. 대기업의 경우 진작에 나갔고 최근에는 중소기업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의 노동정책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경규제, 노동규제 등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너무 힘든 상황이다. 최저임금 인상부터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최저임금도 차등적용을 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 대기업은 정부 정책을 따라갈 여력이 되는데, 중소기업은 아예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기업 규제 완화는 결국 투자로 이어진다. 대기업이 투자를 하면 중소기업도 따라서 투자하는 낙수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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