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과속에 끝내 미국의 인내심이 다 한듯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양국이 상의 없이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선 것. 미국의 대북 기조 변화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간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운전자임을 자임했다. 한반도 운전자론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주변 국가들의 신뢰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이어져온 문 대통령의 과속은 국제사회로부터 한국 외교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국제사회와 북한 사이 간극을 채우기는커녕 북한의 주장만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힐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가 더욱 강경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관측이다.

- 폼페이오 , 단동행동 하지 않게 할 것대북 제재 이탈 말라 최후통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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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놓친 , 핵 딜레마 자초... 진정성 인정받기 어려울 것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싱가포르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북한에 비핵화를 할 경우 얻을 수 있는 혜택과 밝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북제재 완화를 두고 한미 간 입장 차가 불거져 온 터라 문 대통령이 미국 강경 우파를 대표하는 펜스 부통령과의 만남에선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문 대통령은 제재 완화로 북한에 비핵화를 지속할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제제완화요청에
펜스 “CVID 진전 봐야

이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로 답했다. 그는 북한이 앞으로 더 많은 중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북핵 폐기 협상을 진전시킬 의지가 있다면, ·시설 사찰 요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과 34분간의 면담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선 속내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펜스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미국 정부)는 과거 정부들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지난 수십 년간 북한과 비핵화 협상 후 (북한의 약속만 믿고) 제재를 해제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줬지만 약속이 깨지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이는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호소해 온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국 부통령이 북한의 선() 핵 폐기 관련 조치, 미국과 국제사회의 후() 상응 조치대북제재 원칙을 재차 상기시킨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9일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례 없는 외교·경제적 압박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까지 모든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대북) 제재를 포함한 압력을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며 미국의 () 비핵화-() 제재 완화기조를 명확히 했다.

백악관은 이번 순방에서 펜스 부통령은 한반도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재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9일 열린 미·중 간 ‘2+2 외교·안보 대화에서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에 북한 FFVD를 위한 유엔 제재 이행을 강조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설득해왔다. 대북제재 틀은 지키되 북한에 경제번영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부분적으론 경협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는 남북관계가 한 발 앞서가는 상황이 기회가 아닌 불협화음이란 시각이 녹아있다.

성과물시급한 트럼프,
대화 안 통하면 다음은?

미국이 이처럼 대북 강경기조로 돌아선 데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한 미국 내 정치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북한 문제를 거론하며 트럼프 정부에 비핵화의 성과물을 내놓으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은 하원에서 외교위와 군사위 위원장의 권한을 활용, 북한과의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감독하겠다며 각종 청문회 증인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끊임없이 브레이크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인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이후 종전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미국은 북측에 무엇을 제공할 것인지, 비핵화 진행 검증은 어떻게 하는지 등 세부적인 정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북핵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결국 자신의 임기 내에 업적을 남기기 위함이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한 대통령 이란 타이틀은 그의 재선가도에도 날개를 달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택한 전략은 대북 온화 정책이었다. 그러나 그의 온화 메시지에 북한은 화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물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원을 가져간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재선을 위한 성과물이 시급한 상황에서 대북 기조는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화가 안 통한다 느끼는 순간 그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라며 결국 미국이 북한을 힘으로 누르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전 정권과의 업적 차별화와 국내 정치 돌파구가 필요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웅심과 북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이 서로 통할 수 있었던 시점이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풀 절호의 기회였다하지만 기회를 놓친 북한은 핵 딜레마를 자초했다. 이제 판을 엎거나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자니 미국의 군사압박이 염려되고, 선별적인 실험장이나 발사시설 해체 참관 등 웬만한 제안으로는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딜레마에 처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미국의 입장 변화는 지난 2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한국 대표단이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와 워킹그룹 1차 회의를 하기 위해 국무부 청사에 도착한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상의 없이 단독행동을 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단독행동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남북관계 진전과 북한 비핵화가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을 직설적으로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남북관계 진전이 북한 비핵화보다 앞서 가선 곤란하다는 미국 정부 내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제재·압박에서 한국이 이탈하지 말라는 요구를 이번엔 수위를 더 높여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北美 간극못 좁힌
한미 동맹까지 흔들

이처럼 미국과 북한이 다시 강대 강대치 국면으로 들어설 조짐을 보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임계점에 다 달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북한과 미국 간 간극을 좁혀야 할 문 대통령이 시종일관 북한의 입장만 대변한 탓에 이 같은 대치 국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과 국제 사화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에만 방점을 찍어 왔다. 문 대통령은 1013~21, 유럽 순방을 하면서 대북제재 해제를 역설했지만 각국 정상에게 사실상 거절당했다.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은 모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제재 완화에 앞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한 술 더 떠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 직후인 지난 1023일 쫓기듯 평양공동선언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국무회의의 심의 의결을 거쳐 비준했다. ‘평양선언은 판문점선언의 이행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해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이는 유럽 순방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문 대통령의 조급함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국민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년간 조 단위가 넘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국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권의 반발도 극에 달했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쳤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이 비핵화를 앞당긴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 하지만 이는 문 대통령의 생각이지 미국의 생각은 아니다라며 보다 확실한 건 철저한 한·미 공조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앞당긴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문 대통령의 과속은 한미 동맹의 근간까지 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문 대통령과 국방부 그리고 미국 간의 엇박자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1022일 국방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9(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의 유예를 발표했다. 이 훈련은 한·미 항공기 200여 대 이상 대규모로 참여하며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훈련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 정부와 협의를 완료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예 사실을 공식화했다. 미국이 12월로 예정된 훈련에 대해 우리 정부와 합의 완료 과정을 생략하고 상당히 이른 시점에 유예 결정을 발표한 것은 동맹국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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