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로 정치적 논란 휩싸일 수 있어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판사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앞서 전국 법관들은 내부 공론을 통해 사버농단 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해 ‘법관 탄핵’을 결의해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와는 반대로 형사조치를 반대한다는 판사들의 의견도 나와 대법원장의 결단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법농단’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공감대 형성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2차 정기회의를 열고 법관 탄핵에 관한 내용이 담긴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 결의를 참석자 과반 이상 찬성 의견으로 채택했다.

법관 대표들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재판거래와 개입 문제를 지적하면서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한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각급 법원 대표들이 재판거래 또는 개입이 위헌일수 있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뜻이다. 아울러 방법론적으로 징계절차 이외에 ‘탄핵소추절차’를 적시, 연루 법관에 대한 파면이 고려될 정도로 헌법을 심각하게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이번 법관 탄핵 논의는 사법농단 의혹을 법관 파면 사유에 해당하는 헌법 위배행위로 보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거나 탄핵소추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법관을 파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울러 검찰의 사법농단 사건 기소가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재판 신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법관 탄핵이 제시된다. 탄핵소추 의결이 이뤄지면 당사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권한 행사가 정지되기 때문에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판사들을 재판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탄핵소추 여부
국회의 권한

이번 법관대표들의 의결은 사법농단 의혹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 진행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삼권 분립에 원칙에 따라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여부는 입법부인 국회의 권한인 까닭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탄핵소추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탄핵소추로 인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법원이 국회에서 하는 탄핵소추에 관한 선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등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다만 이번 법관대표들의 결의는 국회와 시민사회의 법관 탄핵 관련 논의의 촉매가 될 여지는 상당하다. 향후 논의가 어느 방향으로 귀결되는지 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당분간 ‘법관 탄핵론’이 사회적 화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회는 재적 의원 3분의 1이상 발의에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법관 등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국회 의결이 있으면 헌법재판소의 심리를 거치게 되는데,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할 경우 탄핵된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 결정이 되면 즉시 면직된다. 다만 향후 논의가 진전되더라도 실제 법관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기까지는 진통이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그간 국내에서 유례없는 법관에 대한 탄핵 논의라는 점 등에서 첨예한 이견이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이 다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야가 이견 대립은 물론이고 사법부 내부에서도 법관 탄핵 문제에 대해 반감을 가진 구성원들이 반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또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더라도 가결 여부가 미지수다. 

당초 법관 탄핵 관련안은 정식 안건이 아니었지만, 법관 대표 12명의 현장 발의를 통해 정식 안건으로 채택됐다. 법관 탄핵 관련안 의결에는 법관 대표 105명이 참가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탄핵 문제 말 아껴

21일 법원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전날 법관 대표들의 결의문을 전자문서 형태로 전달받았으나 이날까지 별도의 공식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9일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 법관 대표 참가자 70여명과의 만찬장에 출입하는 과정에서도 탄핵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당시 그는 '탄핵 관련안 가결 등에 대한 견해', '인사 불이익이 있었다는 의견에 대한 견해',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입장' 등 질의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 대표들과의 만찬장에서도 탄핵 결의 등 회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고 한다. 

법원 내부에서는 국회 소관인 판사 탄핵 문제에 대해 대법원장이 공식 입장을 내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사법부 내에서 탄핵 목소리가 나온 것에 대해 대법원장이 원론적인 입장이라도 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고 한다.

1985·2009년 두 차례
탄핵소추 불발

앞서 법관 관련 탄핵소추 논의는 지난 1985년과 2009년 크게 두 차례 이뤄졌던 바 있다. 하지만 모두 국회에서 불발되면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오르지 못했다.

현재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법관 탄핵 찬성 측에서는 헌법적 장치를 통해 사법부 쇄신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국회를 통한 법관 탄핵소추는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등의 반대론도 적찮은 실정이다.

그간 국내에서 탄핵을 통해 법관이 파면된 사례는 없다. 앞서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2차례 발의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부결되거나 폐기 수순을 밟았다.

첫 법관 탄핵 발의는 지난 1985년 10월 고 유태흥 전 대법원장에 대해 이뤄졌다. 당시 야당이던 신한민주당(신민당) 의원 102명 전원의 이름으로 유 전 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 본회의 논의까지 거쳤으나 재석 247명 중 ▲찬성 95명 ▲반대 146명 ▲기권 5명 ▲무효 1명으로 부결됐다.

이 탄핵안 발의 배경에는 ‘특정 법관에 대한 인사 불이익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박시환(65·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은 신군부 집권 시절이던 1985년 6월 가두시위 및 유인물 배포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대학생 11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같은 해 9월 춘천지법 영월지원으로 발령받았다. 

또 서태영(67·6기) 전 판사 박 전 대법관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고를 하자 서울민사지법 발령 하루 만에 부산지법 울산지원으로 좌천됐다. 이후 부당 인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는데, 이는 이른바 ‘2차 사법파동'이 벌어지게 되는 불씨 가운데 하나가 됐다.

두 번째 법관 탄핵 발의는 2009년 11월 신영철(64·8기) 전 대법관에 대해 이뤄졌다. 이는 당시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친박연대 등 5개 야당과 무소속 의원 105명의 발의로 이뤄졌다. 

해당 탄핵안은 이른바 ‘재판개입' 문제를 기화로 발의됐다. 

신 전 대법관이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법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광우병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식으로 배당하고 담당 판사들에게 이메일 등을 보내는 등 재판 업무에 개입했다는 것이 당시 탄핵안 발의 사유였다.

하지만 신 전 대법관에 대한 탄핵안은 국회의 표결조차 거치지 못하고 폐기됐다. 국회법 130조에 따라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72시간 이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폐기된 것으로 보는데, 여야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기한을 넘겼던 까닭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