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해방 64주년, 식품업계는 아직도 일본 속국

글리코의 코비와 롯데제과 빼뱨로(좌) 남양유업의 17차와 아사히음료 16차

8·15 광복이 64주년이 지났지만 유독 일본의 영향을 떨치지 못한 업계가 있다. 바로 식품업계가 그곳이다. 국내에서 내로라 할 히트 식품 중에는 일본 제품을 그대로 따라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제품명만 살짝 바꿨을 뿐, 디자인이나 맛까지도 흡사하다는 평가다. 이런 표절 제품은 정작 국내에서만 유통된 탓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식품업계 표절 실태를 짚어봤다.

새우깡, 초코송이, 고래밥, 칼로리발란스, 아미노업, 17차…. 국내서 히트상품으로 불리는 식품들이다. 짧게는 수년 전부터 길게는 수십년 전에 출시된 장수상품이지만 아직까지 씻지 못한 오명도 있다. 바로 일본의 ‘표절 제품’이라는 불명예다.

분명 이들 제품은 국내 제과 및 음료시장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지만 이들의 태생은 표절시비에 늘 시달려왔다. 제품 디자인이나 성분, 심지어 맛까지도 일본 제품과 흡사하다.


짝퉁 식품 중국보다 심해

사실 재계에서 ‘표절 제품’이라면 학을 떼게 되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휴대폰 디자인은 물론이고 자동차 모델까지 베낀 ‘짝퉁 상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게임까지 표절해 게임업계의 매출 우려가 현실화 되는 상황이다. 재계에서 이같은 형태가 눈에 고을 리가 없다. 국제적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부터, 중국의 자국중심주의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제는 이런 ‘표절 제품’이 단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서도 베껴 만든 제품이 적지 않은 탓에 국제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국내 실정이 이렇다보니 정작 중국의 ‘묻지마 베끼기’에 일방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국내에서 만든 ‘표절 제품’의 정점을 이루는 곳은 바로 식품업계다.

롯데제과의 대표적 히트상품 빼빼로는 일본의 3대 제과 브랜드인 글리코의 ‘포키’(POCKY)와 맛은 물론 포장 디자인까지 거의 유사하다. 오리온의 초코송이는 메이지 ‘키노코노야마(きのこの山)’을, 고래밥은 모리나제과의 ‘오톳토(おっとっと)’를 모방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뿐만 아니다. 농심 새우깡은 일본 스낵 브랜드인 가루비의 ‘갑파에비센’(かっぱえびせん)과 매운맛 새우깡이나 쌀새우깡 등 후속 라인업까지 유사하다. ‘갑파에비센’의 ‘에비’란 새우를 뜻한다. 다이어트식품으로 주목받던 해태제과 칼로리바란스와 일본 오츠카제약의 ‘칼로리메이트(カロリ-メイト)’도 포장 디자인부터 제품 형태까지 유사하다.

이들의 유사성이 단지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는 힘들다. 일본의 제품이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있기 때문이다.

‘포키’는 1966년부터 발매되기 시작했다. 반면 빼빼로가 국내 출시된 것은 1988년이다.

‘갑파에비센’은 1955년 ‘갑파아라레’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64년 지금의 ‘갑파에비센’으로 판매됐지만 새우깡은 1971년 판매된 제품이다. 초코송이와 고래밥은 1984년에 출시됐지만 ‘키노코노야마’와 ‘오톳토’는 각각 1975년, 1981년 출시됐다. ‘칼로리메이트’ 역시 1983년 발매 됐지만 칼로리바란스는 1995년이 돼서야 국내에 선보였다.

일본제품 배끼기 실태는 제과업계 뿐이 아니다. 음료업계의 ‘묻지마 배끼기’ 실태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남양유업 녹차음료 17차와 아사히음료의 ‘16차(十六茶)’에 숫자 하나를 더한 모양새다. 일본의 ‘16차’는 1993년 출시돼 일본내서 히트를 친 상품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2005년 17차를 출시한 후 카피제품을 우려해 1~99차까지 상표등록을 하기도 했다.

해태음료의 아미노업 역시 이같은 표절논란에 자유롭지 않다. 일본 기린의 ‘아미노서플리(アミノサプリ)’와 유사한 탓이다. 둘다 아미노산을 표방하는 제품임과 동시에 제품 디자인까지 매우 유사하다. ‘아미노서플리’가 2002년에 출시된 반면 ‘아미노업’은 2004년에 출시됐다.

이들 식품업체들은 하나같이 ‘벤치마킹’은 인정하면서도 ‘표절’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직접 디자인하고 상표권 등록을 통해 적법하게 판매되는 제품이다”라며 “일본과 비슷한 문화권인 만큼 벤치마킹 한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계속 되는 ‘표절 상품’

이런 식품사의 자신감에는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표절 제품’을 쉽게 알지 못한다는 이유가 컸다. 국내에서만 유통되다 보니 일본제품이 수입되지 않는 이상 비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상표권 법도 국내 식품사가 우선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업체가 자사 상품을 모방했다며 종종 소송을 걸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까지는 한국과 일본이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일본 측이 대부분 패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똑같아 보여도 줄 하나가 더 들어가 있으면 한국에서는 모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국 표절 논란이 된 제품군은 버젓이 팔리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가 아직 일본 영향권 안에 놓여있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비롯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베끼기 실태는 장기적으로 중국 등 타국가의 ‘표절 제품’에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브랜드의 자체상품 개발에 더욱 치중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전문가는 “식품업계가 특히 카피제품에 관대한 측면이 있다”면서 “코앞만 바라보고 일본의 히트작을 무작정 따라한다는 것은 국가신인도 차원에서 지양돼야 할 일”이라고 충고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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