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인간의 이성과 정신을 탐구하던 19세기 근대 런던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지킬 박사와 병원 이사회는 정신질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신약 실험을 놓고 대립한다. <지킬앤하이드>의 처음을 장식하는 합창 ‘가면1’은 지킬 박사의 비장한 분위기와 맞물려 사회 기득권의 위선, 이중성, 악마성을 폭로하는데, 원작 고전과 대형 뮤지컬의 강렬한 혼합은 지킬을 가로막는 런던의 암울함이나 인간성의 모순을 음악적 스펙터클로 펼쳐 놓게 한다.
   
격리된 광인, 정신질환자들을 바라보는 지킬의 강한 동정심은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고, 실험을 조롱하는 이사회를 향한 혐오로도 이어진다. 자신과 타자 간의 뚜렷한 대립각은 <지킬앤하이드>의 특징으로 지킬의 약혼녀 엠마 역시 그녀가 택한 사랑을 위해 아버지의 염려와 주변 이들의 따가운 소문을 견뎌내고 있다.

엠마의 헌신은 지킬 내면의 대립각을 선과 악이 아닌 일과 사랑이라는 보통의 차원으로도 추가시키는데, 이는 비난을 감수하고 추구하는 근대의 가치들이 엠마 앞에서 의사이자 과학자라는 직업 즉 하나의 일로써 축소되는 과정이다. 지킬은 사랑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며 일과 사랑 모두 이루고자 하는 막연한 바람을 내비친다. 이 같은 등장인물의 고뇌와 대립은 거리의 여자 루시의 등장으로 한층 더 다양해진다.
 
병원 이사회 등 상류층들이 천사의 가면을 쓰고 혹은 가면을 마음껏 벗고 찾아오는 웨스트엔드 클럽에서 루시는 반대로 위악의 가면을 쓴다. 욕망을 해소하고 저택과 성당으로 돌아가는 위선자들 뒤에서 루시는 ‘나는 누구일까’를 부르며 생존을 위한 가면이 어떤 불안과 슬픔인지 전한다. 가면에 충실하기 위해 쾌락적 아름다움(노래 ‘뜨겁게 온몸이 달았어’)에 몰입하나 끝내 여린 성품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은 순수한 거리의 여자들이 겪는 비극을 일부 암시하기도 한다.

홍등가에 찌든 루시가 처음 본 지킬의 작은 친절에 마음이 뺏기는 장면은 꿈 같은 만남 또는 거짓말 같은 변화가 오기 전에는 현재 불행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리고 그 순간을 소망하는 모든 이들의 알레고리다. 그 공감대는 소망하던 것이 대가 없이 나타난다면 “누구나 그것을 한껏 잡고 싶지 않을까”하는 마음(노래 ‘당신이라면’)에서 시작한다. 원하는 것을 얻거나 쟁취한 적이 없는 소박한 루시는 지킬과 맺어지지 못하는 슬픔 또한 다시 일어서기 위한 기쁨으로 승화한다. 루시의 ‘시작해 새 인생’은 잠깐 스쳤던 사랑을 평생 간직하는 모든 이들의 노래가 된다.

지킬을 직접 찾아감으로써 일어난 루시의 변화는 지킬의 다른 인격 하이드를 통해 영원히 막 내린다. 루시의 죽음은 그녀의 불가피한 요소와 하이드의 상징성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나, 문학적 여성성만을 얘기한다면 이런 비극 없이는 천사 같은 루시를 현실로 끌어올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는 비극에 빠트리지 않고서는 현실적인 존재감을 부여하지 못하는 소설적 비정함이기도 할 것이다.

지킬이 ‘지금 이 순간’을 부르던 순간이나 다른 인격 하이드와의 충돌로 절규하는 장면(노래 ‘대결’)은 루시의 비극과 함께 <지킬앤하이드>의 주요 지점이다. 과학의 무한한 가능성과 더 나은 방향으로의 확신, 그러다 돌연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함 속에서 외롭게 신을 찾는 지킬의 ‘지금 이 순간’은 시대 혁명이자 한 인간의 이상이다. 스스로 실험대에 오른 결심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동일뿐만 아니라 주어진 영역을 초월하려는 도전에 대한 실패이기도 해 근대 이후까지 내다보는 광인의 신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하이드의 연쇄살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지킬앤하이드>의 깊이는 다시 달라질 것이다. 비극은 언제나 우리를 고취 시킨다는 점에서, 이미 그 안에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 <지킬앤하이드>의 가치는 여전히 충분하다. 많은 명장면 가운데 배우 박은태의 ‘대결’은 대체 불가능한 천재성의 발현처럼 보였다. 고통과 광기에 휩싸인 지킬을 육체적으로 뜯어내는 것 같은 연기, 공간을 압도하는 성량과 음역이야말로 뮤지컬 스펙터클의 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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