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야, ‘Water shows the hidden heart’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힐링이란 말을 요즘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전쟁터 같은 고단한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좌절감과 무력감, 분노 등을 이겨내게 했던 힐링이란 말. 듣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졌던 그 말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말이 사라졌다는 것은 국민들이 그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라면 힐링을 통해 행복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치유해야 할 텐데 힐링이란 말이 철 지난 유행어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힐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이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복해졌다는 것일까?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불행의 늪에 빠져 있다는 통계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국민행복지표 개발을 연구하면서 올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5명 중 1명은 현재도 불행하지만 미래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인의 20.2%과거도 불행했고 현재도 불행하며 미래도 희망적이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고 조사됐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가장 낮은 삶의 만족도 그리고 감정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이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러면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도 힐링이란 말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우리가 제대로 된 힐링문화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힐링이라고 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특별한 오락거리를 즐기거나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해 벌이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서 멋진 풍광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캠핑을 가서 자연 속에서 어울리는 일들을 힐링이라고 인식한다. 또는 경치 좋은 호텔이나 콘도에서 쉬면서 이제까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체험하는 것을 힐링이라고 여겨왔다.

사실 그런 오락과 놀이도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준다는 차원에서 힐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진정한 힐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진정한 힐링은 즐거움을 쫓는 것이 아니다. 감각적 재미를 통해 억압된 감정을 누르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다. 시끌벅적하게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은 더욱 아니며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사투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그것은 내면의 고요함과 마주하는 행위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정화되지 않는 감정들을 오롯이 확인하는 일이다. 그렇게 먹구름 같은 감정을 놓아버림으로써 내면의 불꽃같은 에너지를 깨워 눈부신 충만함을 느끼는 행위인 것이다.

어쩌면 힐링은 즐거움과는 반대되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고통스럽고 엄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말을 맞아 힐링이 필요하거든 즐거움이 아닌 충만함을 느껴보시라. 그 충만함 속에 쉽사리 상처 받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광대한 자신이 숨어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 엔야의 ‘Water shows the hidden heart'를 들으며 잠시라도 제대로 된 힐링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