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유죄, 유전무죄’ 법 위반 적발 경고 처리

정경유착은 한국형 고질병이다. 권력과 재벌의 유착은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는 글로벌 경영에 역행하는 후진국형 사회현상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과 권력의 유착이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의 ‘삼성생명’에 대한 감사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솜방망이 처벌로 봐줬다는 의혹이다. 정부의 ‘삼성 봐주기’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X-파일, 에버랜드 BW발행, 김용철 변호사 폭로 등의 사건 때마다 흐지부지 넘어갔다. 삼성의 힘은 기업이 아니라 ‘삼성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막강하다. 일각에선 “삼성의 힘이 이미 정부 권력을 넘어섰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금감원의 삼성생명 감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19일 ‘삼성생명 종합감사결과 조치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삼성생명이 7개 분야에 걸쳐 5개 법조항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경미한 수준의 처분만을 내렸다. 법 위반 사실에 ‘기관에 과태료 1천만 원, 임원 2명에게 주의적 경고, 직원 2명 감봉, 견책 3명’이라는 솜방망이를 휘두른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6월 23일,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금감원의 삼성생명 종합 감사 결과에 대해 ‘전형적인 삼성 봐주기’라고 비판했다. 이로써 다시 한 번 고질적인 정부의 ‘삼성 편애’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 의원은 “어마어마한 삼성생명의 불법행위가 있었지만, 낮은 수준의 처분을 내려, 정부기관의 ‘고질적인’ 삼성 편애를 확인시켜 준 셈”이라며 “삼성생명의 상장 과정을 고려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태료만 2100여억 원인데, 안 내도 된다?

삼성생명은 ‘통합 보장 보험’을 판매하면서 ‘중복된 부분은 잡아주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준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하지만 기존 보험에 비해 보장금액이 초과되는 부분은 공지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만 드러나도록 전산시스템을 설계·운용했다. 즉, ‘표준보장자자산모델’이라는 전산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이미 가입한 보험(보장 보험 금액)이 이 프로그램 금액보다 적은 경우에는 ‘부족액’이라고 표시되게 했다. 하지만 보장 보험 금액이 초과되는 경우에는 표시하지 않도록 해 통합 보장 보험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통합 보장 보험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교 안내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험업법 제97조는 ‘이미 성립한 보험 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키면서 새로운 보험 계약을 청약케 하거나, 새로운 보험 계약을 청약하게 하면서 기존 보험 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보험은 오랜 기간 유지할수록 ‘할인 혜택’이 많아지고, 보장 보험 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생명의 기존계약을 소멸·신계약을 체결한 건수 25만8618건의 83.4%에 해당되는 약21만 건이 보험업법 제97조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 동조 위반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어, 21만 건의 위반 사실에 대해 위반 건수마다 과태료를 따로 부과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각 건당 100만 원을 부과한다고 가정하면) 삼성생명은 총 2100억여 원을 부과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이 처벌조항을 전혀 적용하지 않았고, 주의적 경고 1명, 견책 1명, 주의 2명의 처분에 그쳤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보험계약의 중요사항을 비교하는 전산프로그램 자체를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것은 매우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법 위반 상태”라며 “하는 둥 마는 둥의 처벌(?)을 한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 금융기관과 차별 확연

이번 금융위원회의 결정은 타 금융기관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삼성생명은 합성자산담보부증권(SCDO) 15건 등을 투자함에 있어 시가평가 대상 외화유가증권에 대한 시장위험 관리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운용했다. 금감원은 (2009년 9월 말 기준) 2203억 원의 추가 손실 발생 이유로 ‘견책 1명, 주의 3명’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비슷한 시기에 과도한 외형확대 목표 설정 및 무분별한 고위험 상품 투자 등의 이유로 1조6000억 원의 손실을 봤다며, ‘전 은행장에 대해 업무집행정지 3개월 상당 조치와 면직 1, 감봉 6, 견책 12, 주의적 경고 2, 주의 25명’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금호생명에는 외국환 위험 관리 기준 등을 마련하지 않고 안정성이 낮은 후순위의 외화 유가 증권에 거대 투자를 해 2844억 원의 손실을 봤다며 ‘기관경고, 대표이사 2명 문책, 자산운용담당 임원 2명 견책, 기타 임직원 4명 주의 조치’를 내렸다. ‘회사 대표에 대한 처벌’ ‘기관 경고’ 조치가 있고 없음만을 따져보더라도 금감원의 후속 조치 강도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자기자본에 비해 과도한 투자, 투자한 해외증권의 성격 등 각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삼성 봐주기’에 대한 의혹의 눈길을 거둘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환 위험 관리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과 시행세칙인 ‘외국환 위험 관리 예시기준’에서 ‘평가손실금이 투자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손절매 실시와 손실금액 추산’이라는 동일한 기준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벌은 이 기준에 따라 산정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박 의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삼성생명은 공정거래법상 부당내부 거래 혐의도 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부당한 지원을 하고, 특수관계인 내부거래만 사전 감시해 대상 기준 금액을 상향조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 연구소에 부당지원 사실 드러나

특수관계인이 있는 삼성경제 연구소는 총 36건의 보고서에 대해 51억7000만 원의 연구 용역비를 부당하게 지출했다. 회사 업무와 관련성이 적은 과제 등에 대한 연구 용역 의뢰, 표절·재활용 등의 내용을 담은 부실 보고서에 대한 검수를 소홀히 하는 방법 등을 사용했다.

삼성생명은 이런 삼성경제연구소에 2006년 이후 2009년까지 총 18회에 걸쳐 148개 과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계약금으로 201억여 원을 지출했다.

이것은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행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주의적 경고 1, 주의 3의 처분을 내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서는 삼성생명이 외부 연구용역 의뢰건수와 계약금액 중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한 비용을 알 수조차 없다. 박 의원은 “삼성생명의 삼성경제연구소의 부당지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이와 더불어 통합 보장 보험에 대한 허위·과장 광고 등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금융감독원의 ‘눈 감고 아웅’식의 행태에 대해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것이 삼성생명의 상장 시기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5월 3,4일 공모신청을 했고, 12일 상장이 있었다. 삼성생명의 위법 행위에 어울리는(?) 처분이 있었다면 상장 과정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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