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곧 경쟁력’…외부 인사 등용

현대·기아차 차량성능담당 알버트 비어만 사장(왼쪽)과 ㈜한화 화약 및 방산부문 통합 대표이사 옥경석 사장_뉴시스
현대·기아차 차량성능담당 알버트 비어만 사장(왼쪽)과 ㈜한화 화약 및 방산부문 통합 대표이사 옥경석 사장_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기업들이 인사에서 불문율과 같았던 '외부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순혈주의를 강조하던 대표적 그룹인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마저 이 같은 바람이 불면서 그동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대차·LG·CJ 등 파격 수혈…재계 전반 확산 추세
성과 중심 인재 전진 배치…차세대 리더 육성 의지

또 올해 그룹의 수장이나 바뀌거나 ‘권력 이양’이 일어난 대기업 위주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전 기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일각에선 반세기 유지됐던 기업의 순혈주의가 이번에는 깨질지를 주목 한다.


재계에서 ‘순혈(純血)주의’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외부수혈을 통한 인적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정·'변화' 모두 추구

재계 4위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주)LG에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외부 인재를 대거 수혈해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특히 구 회장은 최근 진행 된 정기임원 인사에서 LG에 3명의 외부 인재를 수혈하는 한편 그룹 내 다양한 인재 기용을 통해 신사업 등 사업포트폴리오 강화를 꾀한 모습이다. 

우선 (주)LG는 베인&컴퍼니 코리아 대표를 지낸 50대 초반의 홍범식 씨를 사장에 기용했다. 홍범식 사장은 ㈜LG 경영전략팀장을 맡아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게 된다.

홍 사장은 1968년생으로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SK텔레콤 등을 거치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그는 베인&컴퍼니에서 다양한 산업분야의 포트폴리오 전략, 성장 전략, 인수합병, 디지털 환경과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필요한 기업의 혁신 전략 등에 대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재로 평가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출신의 김형남 씨(1962년생)를 부사장으로 발탁했고, 김이경(1970년생) 전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을 데려왔다. 김 부사장은 현재 한국타이어의 연구개발(R&D) 분야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LG그룹의 김 사장 영입 추진이 그룹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로 지목한 자동차 전장 사업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이어 LG전자는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 상무를 VS 사업본부 전무로, LG경제연구원은 박진원 전 SBS 논설위원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정책 연구담당 전무로 각각 외부 영입했다.

순혈주의라면 빠지지 않는 현대자동차마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차량 개발과 상품의 주요 보직에 모두 ‘용병’을 기용하며 순혈주의를 깬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BMW 출신인 알버트 비어만 차량성능담당 사장을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현대차그룹이 외국인 임원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앉힌 건 이번 이 처음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0월 인사를 통해서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을 상품전략본부장에,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은 현대차 디자인 최고책임자(CDO)에 올렸다. 또 삼성전자 출신인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도 영입 1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시켜 스마트시티·모빌리티·로봇·인공지능(AI) 등 미래 핵심과제 추진에 힘을 실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신설 조직에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를 중용했다.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포스코는 철강·비철강·신성장 3개 부문으로 확대·개편하고 부문별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비철강부문은 포스코대우, 포스코건설, 포스코에너지, 포스코ICT 등 비철강 그룹사의 성장 전략 수립과 사업관리를 담당하게 된다. 비철강부문장은 가치경영센터장을 맡고 있는 전중선 부사장이 당분간 겸임한다.

신성장부문은 2차전지 소재사업 등 미래성장동력 발굴과 육성을 맡는다. 신성장부문은 오규석 전 대림산업 사장이 총괄한다. 1963년생인 그는 LG텔레콤 전략개발실장 상무, 전략기획담당 상무, 하나로텔레콤 경영전략실장 전무, 전략부문장 전무 등을 맡는 등 '전략통'으로 통한다.

신성장부문 산하엔 벤처육성 및 지역경제 활성화와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산학협력실'이 신설된다. 이 자리엔 박성진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선임됐다. 1968년생으로 포스텍 기술지주회사 대표와 산학처장을 지내는 등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다.

오규석 신성장부문장과 박성진 산학협력실장 모두 60년대생이다. 젊은 피 수혈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미래 신성장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포스코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포스코경영연구원장에는 산업연구원 출신 장윤종 박사를 영입했다.

지난 10월 한화는 ㈜한화 화약 부문과 방산 부문을 통합하면서 ‘30년 삼성맨’ 옥경석 화약부문 사장을 대표이사에 올렸으며, CJ 대한통운은 ‘40년 삼성맨’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을 부회장으로 영입하고, CJ㈜ 공동 대표이사에 앉혔다.

DGB금융지주 사상 첫 외부출신 최고경영자 김태오 회장도 '안정'보다 '변화'를 택했다.

김 회장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단행된 최근 임원 인사에서 기존 임원의 절반 이상을 물갈이하고, 일부 임원은 공모를 통해 외부에서 영입하기로 했다.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대부분 임원 사표를 수리하고 상당수 임원을 외부수혈하기로 한것은 추락한 그룹 신뢰와 이미지를 회복함과 동시에 성장전략에 변화를 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은행업계에서 순혈주의를 깨는 인사실험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력한 생존의지로 풀이 

재계에서는 일부 기업의 순혈파괴 바람에 대해 굉장히 파격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엔지니어 혹은 생산라인 출신이 아닌 지원부서 출신으로 최초로 포스코의 사령탑에 오른 최정우 회장이 포스코의 순혈주의를 깨고 새로운 인사에 나섰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이다. 특히 새롭게 신설된 신성장 사업부문의 책임자를 내부 출신이 아닌 거래처인 대림산업에 영입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파격적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간 내부에서만 인물을 찾던 기업들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 것은 순혈주의만로는 힘들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력한 생존의지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어“4차 산업혁명이 심화하면서 유연한 조직 운영의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며 “전자, IT(정보기술), 자동차 등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융합적 전략과 인재를 필요로 한 기업들이 외부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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