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EBS 이사장인 유시춘 작가를 지난여름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여러 가지 우리사회의 돌아가는 일들에 대한 매우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농담처럼 스쳐 지나간 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한 말의 요지는, ‘어머님이 젊으셨을 때 자신을 낳았기 때문에 자신은 무척 싱싱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는데, 남동생인 시민이는 누나가 엄마의 영양가 좋은 젖을 먼저 다 먹어버려서 자신은 상대적으로 덜 좋은 엄마젖을 먹고 자라 머리가 누나만 못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최근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문득 지난여름이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유시민은 이런 사람이었다. 2003년 4월 24일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에 처음으로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경기 고양 덕양갑지역구 개혁국민정당의 후보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닷새 후인 4월 29일 국회에서 의원선서를 하려했으나 그의 복장이 지나치게 캐주얼해서 동료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의원선서를 하지 못하고, 하루가 지난 뒤 정장 차림으로 국회의원 선서를 한 사람이다.

필자는 그때 국회의원 선서는 동료 국회의원들 앞에서 하지만, 동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국민들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가장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복장으로 국회의원 선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바 있다.

그 후 유시민 의원은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여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에 임했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도 활약했다. 그의 정치적 언행은 언제나 뉴스 거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적 언행도 뉴스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현재 해양수산부 장관인 김영춘은 2005년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를 앞두고 유시민 의원이 ‘반 정동영 친 김근태’ 논조로 인터뷰를 했을 때,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고백을 할 정도였다.

이후 유시민은 ‘싸가지 논란’의 중심에 서서 당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그는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낙선하였고, 2010년 노무현 대통령 사후에는 국민참여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야권 단일 경기도지사 후보가 되었지만 김문수 후보에게 지면서 실패했고, 2012년에는 통합진보당의 일원이 되어 당내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이면서 쇠락을 거듭했다.

정치적 재능이 탁월하지 않음을 깨달은 유시민은 스스로 정치를 접고 작가 유시민, 예능인 유시민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는 재능을 유감없이 펼치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텔레비전 화면의 주인공이 되었다. 새로운 유시민의 등장이다. 그는 정의당 당원이라는 굴레도 벗어던졌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뒤를 이어 노무현재단 이사장에도 취임했다.

그의 감추어진 전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정치권에 복귀했다. 그가 부정을 하면 언론과 여론은 더 강한 긍정으로 해석한다.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이낙연을 제외한 박원순, 이재명, 김부겸, 임종석 등 쟁쟁한 후보들을 한참 따돌리며 상위에 랭크됐다.

그랬던 그가 한 출판사가 마련한 강연에서 “남자들은 군대도 가야 하고 여자들보다 특별히 더 받은 것도 없는데, 자기 또래집단을 보면 여자들이 더 유리해 보일 것”이라며 논란을 만들었다. 옛 유시민의 귀환이다. 그가 정치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논란이 아닐 수 없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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