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편법 증여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조성된 자금 일부가 복합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사업 확대를 위한 로비에 사용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며서 지난해 벌어진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의혹'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태광그룹 계열 MSO인 티브로드의 큐릭스 합병 승인 직전인 지난해 3월 김모씨(43) 등 청와대 행정관 2명과 방송통신위원회 뉴미디어과장 신모씨(45)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 모 유흥주점에서 티브로드 문모 팀장(38)으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큰 파장이 일었다.

청와대는 4월1일 행정관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정정길 대통령실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청와대 전 직원을 대상으로 7월7일까지 100일 동안 고강도 내부 감찰을 벌여 내부 기강잡기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로비 의혹이 제기된 직후만 해도 "사건의 진실이 먼저 규명되어야 한다"며 합병 승인 심사를 무기한 연기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5월 방통위는 신씨 등 해당 직원의 사표 수리만으로 사건을 종결짓고 티브로드의 큐릭스 지분 70% 인수를 최종 의결했다.

성접대는 사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뿐, 합병을 위한 로비와는 무관하다는 게 당시 방통위의 판단이었다.

검찰의 수사도 방통위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건 발생 4개월만인 7월 검찰은 김 전 행정관 등을 뇌물수수 혐의를 제외한 채 성매매알선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만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행정관 등의 직무가 케이블방송 합병·승인과는 무관해 뇌물수수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반면 티브로드 문 전 팀장과 방통위 신 전 과장은 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큐릭스 인수과정을 되짚어보면 성접대 의혹이 지나치게 손쉽게 일단락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의 의혹제기가 대표적이다. 최 의원은 태광그룹이 티브로드를 앞세워 2006년 군인공제회 및 화인파트너스와 이면계약을 맺어 큐릭스홀딩스 지분을 편법으로 취득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 의원 주장에 따르면 군인공제회 등은 큐릭스홀딩스 지분 30%를 인수하되 방송법상 소유규제가 완화되면 이를 다시 태광그룹에 매각키로 이면계약을 체결하고 원리금과 이자 10%를 약속받았다.

당시 관련 법은 MSO가 15개 방송권역을 초과해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태광그룹이 방송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군인공제회 등과 사전에 방송권역 장악을 위한 판을 짰다는 것이다.

이면계약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 티브로드(14개 권역)는 큐릭스(6개 권역)를 합병해 20개 방송 권역을 장악하게 된다. 엄밀하게 보면 방송법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인수 의결 당시 "옵션 계약을 통해 큐릭스에 대한 잠재적 지배권을 확보하려 했다는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주식도 보유하지 않아 방송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혀 티브로드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이에 일각에서는 태광그룹의 옵션계약 체결 핵심 사유인 '방송법 회피 의도'를 건드려 보지도 않고 이른바 '파킹'(주식 분산 감추기)을 통한 기업 합병을 공식적으로 합법화시켜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의혹이 잠재해 있는 가운데 13일 시작된 이래 연일 속도를 내고 있는 검찰의 태광그룹 로비의혹 수사가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의혹을 그냥 넘길 리 없다는 관측이 점차 우세해지고 있다.

검찰과 재계 안팎에서는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의혹은 태광그룹이 벌인 광범위한 로비 행각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이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사가 태광그룹 로비의혹의 실체를 밝힐 첫단추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편 태광그룹 로비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해당 (성접대의혹)사건과 지금 수사를 연결하는 것은 아직까지 무리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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