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이번에도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공격수는 연신 헛발질을 해댔고 수비수는 철벽방어에 성공했다. 지난달 31일 한국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불러 특별감찰반 논란과 관련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정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날 15시간의 공방전은 한국당의 완패로 끝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이날 한국당의 모습을 자살골을 넣은 공격수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정확한 팩트 없이 고성과 호통으로 일관한 한국당이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문재인 정부에 반등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운영위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과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당으로서는 이번 임 실장, 조 수석의 운영위 출석이 산업안전보건법 통과와 맞바꾼 사안이기에 더욱 뼈아프다.
 

 

- 靑 ‘임종석·조국-산업법’ 빅딜 ‘신의 한 수’... 한국당은 민심 ‘역풍’ 직면
- 한국당의 ‘임종석 띄우기’? 임 실장 운영위 출석 때마다 한국당 ‘헛발질’

“공격수가 골은 못 넣어도 자살골은 넣지 말아야 하지 않나”.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가 끝난 직후 보수 진영 관계자가 내뱉은 푸념이다. 이날 한국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불러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시도했다.

공격수로 나섰던 자유한국당은 전날 운영위 위원 9명을 교체하며 날카로운 질의를 예고했다. 국회 운영위원은 각 당 원내대표단을 임명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한국당은 이날 국회 운영위를 대비해 나경원 원내대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를 제외한 7인을 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멤버(김도읍, 송언석, 이만희, 이양수, 최교일, 강효상, 전희경 의원)로 새롭게 꾸렸고, 비공개 대책 회의까지 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한국당, 팩트는 없고
고성·호통으로 일관...

하지만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한국당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했다. 일례로 이만희 한국당 의원은 “(김 전 특감반원에 따르면) 정부 부처 산하 수많은 공공기관장이 임기를 남기고 사퇴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공기관장, 감사 등의 성향을 정리한 청와대 문건이 있는데, 강제 사퇴시킨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조 수석은 “비리행위자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관련 지시를 한 적도 없고, 보고를 받지도 않았다. 관련 사건은 검찰에 고발돼 있고, 검찰 수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환경부 산하기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본부장으로 일하다 도중 사퇴한 사람 중 한 명의 증언이 있다”며 음성파일을 공개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음성파일의 주인공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본부장은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23번을 배정받은 인사이며, 3년의 임기를 모두 채운 뒤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운영위 현안보고에서도 한국당 위원들의 고성과 일방적 비난, 망신주기식 발언이 쏟아졌지만, 김태우 수사관이 제기한 의혹에 한발 나아간 ‘한방’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국회 운영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으로부터 “(한국당이) 저런 정도 주장을 가지고 상임위를 열자고 그랬나? 생각보다 너무 부실하다”는 핀잔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한국당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조 수석과 임 실장 카드를 내세워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만들었다.

여야 대치로 산안법 등의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야당이 요구하는 임종석 실장, 조국 수석의 국회 운영위 출석을 받아들였다. 한국당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선 입법 처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카드를 야당에게 던져준 것은 ‘신의 한 수’가 돼 하락일변도의 지지율은 다시 반등의 기회를 얻었다. 현 정부의 실정을 폭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한국당은 거꾸로 민심의 역풍에 직면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해명하고 반박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 꼴이 되고말았다”라며 “한국당은 예상대로 ‘민간인을 사찰했다’ ‘공직자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여권 인사의 비리 첩보를 묵살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나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 임종석 실장과 조국 수석은 구체적으로 반박했다”고 말했다.

文 지지율, 운영위 당일 상승
“동요하던 지지층 돌아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달 31일과 이달 2일 이틀간 전국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지난주보다 2.0%포인트 오른 47.9%로 집계됐다. 부정평가는 2.9%포인트 내린 46.8%, ‘모른다’는 대답이나 무응답은 0.9%포인트 오른 5.3%였다.

앞서 리얼미터의 지난 한주(12월 넷째 주) 주간조사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49.7%)가 긍정평가(45.9%)를 앞서는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나타났다. 리얼미터는 청와대 특별감찰반 의혹과 관련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지난달 31일 오히려 부정평가가 다소 줄었다고 분석했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혹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치권에선 한국당이 임종석 비서실장 한 명도 당해 내지 못한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임 실장이 지난해 2월 21일에도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한국당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되레 여론을 돌려세운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정치권에서는 임 실장의 능력이 발군이었다기보다는 한국당이 ‘자살골’을 넣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김성태 당시 운영위원장은 청와대 관계자가 야당 발언 중에 웃었다는 이유로 앉아있던 임 실장을 일으켜 발언대에 세웠다. 임 실장은 발언대에서 “누가 위원장님 말씀에 웃을 리 있겠느냐”며 “왜 화를 저한테 푸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임 실장은 자리로 돌아와서는 “(지시에) 따르기는 했지만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결국 젊은층에게 한국당이 인기가 없는 게 바로 이러한 권위적인 모습들 때문이다”라며 “그때도 지금도 골 넣으려다 골 먹힌 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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