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 ‘라쇼몽’을 연출하면서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는 언제나 윤색을 한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나무꾼과 스님과 사무라이와 사무라이의 아내, 산적은 각자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믿는 제각각의 거짓말을 한다. 말이 쌓일수록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국회의원이 권한을 남용해 목포에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SBS 보도와 목포 구도심을 살리려는 노력이라는 항변이 부딪치는 것이 세상의 부조리 때문은 아니다. 각자가 믿는 사실이 있을 뿐이고, 누군가는 윤색을 하고 있다. 과거였으면 꼼짝없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말았을 일이지만 손 의원은 SNS와 미디어의 발달로 거대공중파와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손혜원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참眞이슬露’, ‘처음처럼’, ‘힐스테이트’등의 브랜드를 만든 광고업계의 전설적 인물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조동원이라는 홍보전문가를 모셔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야권에서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야권에서 그를 모셔온 것은 천운이었지만 필연이기도 했다.

손 의원은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 중·고 6년 동창으로 절친한 관계다. 남편도 고 김근태 의장의 후원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손 의원은 야권과 인연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로 성공한 손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 홍보전문가로 영입된 이후 촌티 나던 야당의 홍보 역량을 환골탈태시키고 총선 승리와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정치권 입문 이후 손 의원의 브랜드 기획과 디자인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손 의원이 영입된 이후에 민주당에서는 현수막 하나도 허투루 나간 적이 없다. 손 의원은 당명과 로고마저 바꿔버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당명과 색, 디자인으로 형상화되는 세련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손 의원의 손에서 빚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마이다스의 손이었다.

손 의원은 이미 20대 국회 임기를 마치면 더 이상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스스로가 “정치를 하러 당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디자인과 브랜딩 전문가로 홍보를 맡아 들어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으로 자신의 임무가 끝났다고 여긴다. 이 시점에서 손 의원이 정치를 떠났으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반의 인식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투명한 곳이 정치권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은 제도적으로 개인 신상이 대중에게 공개되고 선거과정에서 정적의 공격에 노출되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 정치하던 사람은 사업을 시작하는 데 장애물이 없지만, 사업하던 사람은 정치인으로 살기 위해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친다. 정치인에게는 공적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손 의원은 최소한 부동산 매매, 증여 과정에서 이런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대비했어야 한다. 목포에서의 일은 사적 영역이지만 정치인의 사적 영역은 항상 공적 영역으로 끌려나올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손 의원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 상당히 많은 적을 만들어 왔다. SBS는 손 의원의 취약점을 공략해서 의도한 바를 다 이루었다.

라쇼몽의 세상에서 주장은 엇갈리고 진실은 모호하며 득실도 구분이 어렵다. 진정성은 개나 주고 손 의원은 스스로에게 정치인의 자질이 있는지는 자문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개인의 삶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자신을 위해서도 다음에는 꼭 출마하지 마시라. <이무진 보좌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